李-朴 회담은 ‘與-與 영수회담’?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李 대통령-朴 전 대표 오늘 회동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10일 청와대 회동은 유례없는 집권 초 국정장악력의 저하에 직면한 이명박 정부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상징적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 자체가 잇따른 인사 문제에다 쇠고기 파동으로 지지율 급락사태를 맞은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먼저 손을 내밂으로써 성사됐다. 과거에는 이런 상황이 터지면 대통령이 정국 수습을 위해 야당 총재를 만나자고 했을 것이다. 여야 영수회담이 이루어질 상황이다. 제1야당 대표는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다. 이 대통령이 손 대표 대신 정국 수습의 파트너로 박 전 대표를 택한 것은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을 반영한다. 》

박 대표는 현재 당의 대표가 아니며 어떤 당직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위상과 파워는 미묘하면서도 강력하다는 데 정치권의 이견이 없다.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데다 구심점 역할을 할 스타 정치인이 없다는 점도 그의 몸값을 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도 당정회의도 여야 영수회담도 아닌 모호한 성격의 회동을 감수함으로써 정국 수습의 계기를 마련하려고 나서게 된 것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무엇보다 박 전 대표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국정을 원활하게 이끌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박 전 대표의 위력은 4·9총선에서 다시 한 번 입증됐고 친박 세력은 당 내외를 막론하고 단단한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다. 18대 국회 또한 그의 협조 없이는 여소야대나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를 3김씨에 견주기도 한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씨가 각각 영남, 호남, 충청을 절대적 지지기반으로 삼아 30년 이상을 국정 운영의 ‘주요 주주’로 참여했듯이 박 전 대표 또한 자신만의 철옹성이 있다는 것. ‘박근혜’ 브랜드는 현역 정치인 중 최고의 정치적 상품성을 가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편으로는 박 전 대표의 파워가 여야 경계선에서의 줄타기에서 비롯된다는 해석도 있다. 사실상의 ‘탈당 불사’ 카드로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압박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같은 당 소속 의원을 만나기 위해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하는 회동 성사 과정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말도 있다. 당과 정부, 여당과 야당, 여당 내 정치 지형 모두 과도기적 상황이라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박 회동을 계기로 정국이 수습 국면을 맞는다면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이 같은 ‘여권 내 영수회담’이 되풀이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박 회동이 여권 내에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시켜 정국 운영에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반대로 여권 내 비정상적인 ‘권력분점’이 향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궁극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 기자

■ 李-朴 무슨 얘기 나눌까

‘일부 문제인사 빼고 일괄복당’ 거론 가능성

朴 “전원 복당되면 전대 불출마” 거듭 밝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0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청와대와 박 전 대표 측은 “사전에 조율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지만 여권에서는 친박근혜계 당선자의 복당 문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정 현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1차적인 현안은 복당 문제다. 박 전 대표는 “복당을 해주면 계파정치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7월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여러 차례 복당을 요구해 왔다.

그동안 청와대는 이 문제에 대해 “당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무대응 전략을 써 왔지만 쇠고기 수입 문제 등으로 위기에 몰린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먼저 손을 내민 만큼 이번 회동에서 복당 문제가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복당에 대한 해결책 없이 박 전 대표를 불렀겠느냐”며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이끌어내려면 복당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박희태 의원이 “당 밖 당선자들과도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는 등 친이명박계열 의원들도 복당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박 전 대표가 ‘개별 복당’이나 ‘선별 복당’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 만큼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이 일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친박연대가 비례대표 공천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고, 당 내 친이계열은 물론 친박 내부에서도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 등에게 반감이 있어 일괄 복당이 이뤄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한 친이계열 의원은 “7월 전당대회 직후 공천비리 연루 의혹 등이 제기된 당선자를 제외한 대다수를 받아들이자는 것이 대체적 의견”이라며 여권 핵심의 기류를 전했다.

한 친박 당선자는 “당헌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경우 당원권이 정지되고 유죄가 확정되면 제명되기 때문에 일괄 복당을 허용해도 문제가 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걸러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도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당 대표를 제의할 것이라는 말도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9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부 복당이 되면 당 대표에 나가지 않겠다고 이미 말했다”며 ‘조건부 불출마’ 뜻을 거듭 밝혔다.

그는 “그 문제는 청와대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 대표는 당원들이 선출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중요한 문제는 당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며 선을 긋기도 했다. 현재 친이 측 내부에서는 김형오 국회의장-박희태 당 대표-홍준표 원내대표-임태희 정책위의장의 라인업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 밖에도 한미 FTA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와 광우병 혼란 등 국정 현안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g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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