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허영]정권교체기의 정치윤리 왜 다른가

  • 입력 2008년 1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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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정권 교체는 우리 헌정질서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친북 좌파정부의 시대가 끝나고 실용주의 우파정부가 국정 책임을 위임받아 큰 변화는 불가피하다. 정부조직의 개편과 인적 쇄신을 넘어 정책 방향과 정책 내용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의 밑그림이 차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 취임을 한 달여 앞둔 지금 숨 가쁘게 움직이는 정권인수 작업은 국회의 입법 활동과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마무리된다. 국회 다수당인 친여권 정치세력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친여권은 어떤 자세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가. 2003년의 단순한 정부 이양과 달리 완전히 다른 색깔의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은 경우 대통령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높은 정치윤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현 집권층과 친여권 정치세력은 당리당략을 떠난 투철한 공인의식과 국리민복을 앞세우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정책방향과 정책내용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이라고 마련한 정부조직 개편과 인선작업은 법적인 결함이 없는 한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이 옳다. 그것이 바로 민주적인 정치윤리다. 새 정권의 개편 내용에 대해 비록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해도 새 정부가 순조롭게 출범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는 민주적인 정치윤리의 확립 없이 대통령제가 성공하기는 어렵다.

친여권, 조직개편 협조 바람직

출범을 앞둔 새 정부에 협조하는 이유는 새 정부가 구상하는 일이 최선이라서가 아니라 정권 교체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오늘의 여당이 지난 대선에서 야당으로 바뀐 것처럼, 내일의 여당도 언젠가는 다시 야당으로 변신할 날이 올 것이고, 그때 오늘의 여당이 보여 준 민주적인 정치윤리를 상대에게서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할 수는 없어도 발목을 잡지는 말아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표출된 주권자의 위임 의지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은 대선에서 당선인의 공약을 면밀히 검토하고 그 내용에 공감해서 표를 준 것만은 아니다.

그의 대운하 정책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선택한 국민이 많은 것이 한 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공약한 대운하 건설을 포기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식언이 아니다. 선거공약에 대해서는 식언금지의 법칙(venire contra factum proprium)은 적용되지 않는다. 국민은 이명박 당선인의 세부적인 공약보다는 그가 추구할 큰 정책 방향에 기대를 걸고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국민이 이 당선인에게 기대하는 정책은 분명히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는 크게 다르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이 당선인에게 준 권력의 위임에는 국민이 기대하는 다른 정책의 실현 수단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주권자의 뜻이 이렇다면 이 당선인의 새 정부 출범에 협조하는 것은 바로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일이다. 하물며 임기를 두 달 반쯤 남겨 놓은 국회에서 친여권이 의석수를 내세워 현 정부조직을 지키려고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에 토를 다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을 외면한 다수의 횡포이고 대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개편 및 인사쇄신을 비롯한 정책 내용과 실현 방법 등이 옳고 그른지는 우선 4·9 총선에서 국민이 제1차적인 심판을 할 것이고 그 결과는 새 국회의 의석 분포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도 국민은 상시적인 투입(input)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다.

주권자 뜻 존중하는 게 민주주의

국회가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과 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것은 국회의 당연한 책무다. 이 책무는 임기 말까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정권 교체를 뜻하는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국회 구성을 눈앞에 둔 과도기 국회의 우선적인 책무는 새 정부에 대한 견제 균형보다는 대선에서 표출된 국민의 잠재적이고 경험적인 의사를 존중해서 국민이 선택한 새 대통령의 새 정부가 순조롭게 출범할 수 있도록 협조하는 일이다. 그것이 여야 정권 교체기에 요구되는 민주적인 정치윤리다.

허영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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