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영원한 적은 없다”

  • 입력 2007년 12월 2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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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조건 맞으면 북한-이란과 대립종식”

“라이스(사진) 장관, 임기 내에 북한이나 이란 시리아를 방문할 생각이 있습니까?”(기자)

“보십시오. 미국에겐 ‘영원한 적’은 없습니다.”(라이스 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1일(현지 시간) 송년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영원한 적은 없다”고 두 차례나 강조하면서 “그것이 미국이 위대한 이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19세기 영국 정치가 파머스틴 경의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영원한 국익만이 있을 뿐이다”는 말을 의례적으로 옮긴 수사(修辭)만은 아니었다.

미국과 각을 세워 온 북한 이라크 시리아 등 3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묻는 기자들에게 라이스 장관은 “어느 나라든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조건만 충족한다면 대립 관계를 끝낸다는 게 우리의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초기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강성 용어를 써가며 ‘굴복이냐 대결이냐’를 강요했던 기세등등함이 자취를 감춘 지는 이미 오래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알 카에다, 헤즈볼라 등의 ‘테러조직’을 제외하면 “이제 ‘화해할 수 없는 적(implacable enemy)’은 없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조짐은 올 초부터 이미 나타났다. 대(對)북한 정책이 급선회한 데 이어 앙숙인 시리아와의 관계도 조금씩 풀리고 있다.

미국-시리아 간의 상호 신뢰는 지난달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에서 열린 중동평화회의에 시리아가 미국의 초청으로 참가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즈음부터 “시리아가 팔레스타인 이라크 레바논 문제 등에서 긍정적 역할을 해 주길 희망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시리아 내에서도 미국의 고립정책이 끝날 것이란 기대가 일고 있다. 최근 시리아 국영 TV는 영어뉴스 톱뉴스로 미국과의 문화교류 특집을 다뤘다. 시리아 정부는 아랍 전사(戰士)들이 이라크로 넘어가는 국경 지역의 통로들을 차단해 미국과 이라크 정부를 기쁘게 했다.

‘문제국가 트리오’ 가운데서도 이란에 대한 어조는 여전히 북한이나 시리아에 비해 냉랭하다. 그럼에도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멈추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이란 측을 만나 무엇이든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라이스 장관의 21일 발언은 강압보다는 호소에 가까웠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들은 이 같은 변화의 핵심 요인으로 ‘압도적인 군사력에 근거한 세계 평화’를 외치며 힘의 외교를 밀어붙였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몰락과 나아가 ‘이라크 안정화와 중동 문제 해결에는 이란 시리아의 태도가 핵심 변수’라는 현실적 필요를 꼽았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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