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北 노동신문 “세계 속에 조선 있다”

  • 입력 2007년 11월 13일 03시 04분


코멘트
최근 북한의 행보를 보면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해 낙관과 혼란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16일 방북한 농득마인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게 ‘도이머이(개혁 개방)’ 정책을 배우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로부터 열흘 뒤엔 김영일 북한 내각 총리가 대규모 시찰단을 이끌고 베트남을 찾아 개혁 개방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았다. ‘북한이 점차 베트남의 개방 노선을 따르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자연히 높아졌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의 지난달 29일자 사설에 “세계 속에 조선이 있다”는 문구가 들어간 점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그동안 북한에선 누구도 이 같은 말을 공식적으로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북한 주민들은 “조선이 없는 지구는 없다”는 김 위원장의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 왔다. 두 말에는 세상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대해 정반대의 관점과 인식이 담겨 있다.

노동신문이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이 내 갈 길을 간다”던 북한의 종전 태도에서 한발 비켜나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현실을 인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정기적으로 발표되는 노동신문 사설은 김 위원장의 승인을 받은 뒤에야 실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설은 곧 김 위원장의 뜻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내부의 상황은 이 같은 긍정적인 변화 조짐과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북한이 그동안 암묵적으로 허용해 온 집 전화를 지난달 말부터 차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컴퓨터방도 단속 대상이다. 북한은 최근 몇 년 동안 끊임없이 ‘정보 산업화 시대’를 강조해 왔다. 전화선을 끊어 버리는 지금도 북한은 여전히 정보화 시대를 운운한다.

북한이 도입한 최첨단 장비는 아마도 요즘 북-중 국경에 깔린 것으로 알려진 독일산 휴대전화 탐지기가 아닌가 싶다. 이를 이용해 3개월 전에는 군 공병국 산하 무역기관에서 이른바 ‘간첩단’ 20여 명을 잡아 심문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해 이처럼 시대에 역행하는 폐쇄적 행태를 취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언제쯤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온다. 북한의 국제화는 아직 요원한 꿈인가.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