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이면 끝”… 참을 수 없는 ‘로또선거의 유혹’

  • 입력 2007년 11월 1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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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D-39, 네거티브 공세의 모든 것

대통령선거가 또다시 네거티브 공세로 달아오르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겨냥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BBK주가조작 사건’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까. 아니면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했던 김대업 씨의 ‘병풍(兵風)’처럼 대선 판을 흔들까. 한국 대선의 주요 변수인 네거티브 공세가 어디서 연유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언제 소멸하는지 짚어봤다.

○ 탄생-첩보 정보 내사결과 제보로부터

대선을 치르는 정당이 네거티브 공세의 재료로 삼는 것은 주로 수사, 조사, 정보기관의 첩보나 정보, 내사결과다. 물증이 뒷받침 안 되고, 믿을 만한 사람의 증언이 없어도 된다. 의혹을 제기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이를 수집하는 역할은 ‘정보맨’으로 불리는 의원 보좌관이나 당직자가 주로 맡는다. 의원 중에서도 극소수지만 정보맨이 있다.

정보맨은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를 수집한다.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에선 이들 기관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과 정보맨의 만남이 수시로 은밀하게 이뤄진다. 정치권의 정보를 건네고 원하는 기관의 정보를 받는 ‘딜’을 하는 것이다. 기관 내부 관계자가 직접 정보맨과 접촉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선수’로 불리는 실력 있는 정보맨은 대통합민주신당이나 한나라당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다. 신뢰할 만한 정보를 많이 발굴해 내고, 여러 곳에서 취합한 정보를 조합해 완결성 있는 그림을 그려내야 선수로 평가받는다. ‘선수 1호’로 꼽히는 보좌관 A 씨는 “깔때기처럼 정보가 모이는 곳, 정보가 모이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것만 잘 파악하면 결코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제보가 네거티브 공세의 원천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제보자는 문건이나 사진 등 물증을 들고 정보맨을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정치적인 대가나 사례를 요구하기도 한다.

○살 붙이기-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권으로

정보맨은 입수한 정보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회의 정부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권을 적극 활용한다. 검찰이나 경찰 측에서 나온 정보일 경우 국정원에 관련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또 국정원 측의 정보일 경우 금융감독원에 관련 금융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한나라당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 후보의 처남이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법무부와 금융감독원 등 여러 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가 전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날 경우 네거티브 공세 대상에서 제외한다. 이를 폭로할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여부가 애매한 경우엔 의혹을 증폭시킬 수 있는 근거들을 더 확보하기 위해 힘을 쏟는다. 이 단계에선 정보맨이 직접 사건 관계자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BBK주가조작 사건의 경우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모두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을 시인하는 증언과 부인하는 증언이 있으면 시인에 초점을 맞춘다. 네거티브 공세의 목적은 틀리더라도 공격 대상에게 ‘흠집’을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폭로-효과 극대화 위해 시기 선택

폭로할 준비가 다 된 네거티브 재료도 장기간 묵혀 두는 경우가 많다.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다.

대통합민주신당은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BBK주가조작 사건 등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의혹을 많이 제기하지 않았다. ‘연휴 동안 흐름이 끊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당 후보의 지지율 추이를 면밀히 관찰하며 상승세를 탈 시점에 폭로를 하는 경우도 있다. 유권자의 관심을 많이 모으는 전당대회나 TV토론 등 이벤트가 벌어질 때 폭로를 해 이벤트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것도 네거티브 전략이다.

폭로의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근거가 불충분한 의혹 제기를 할 경우엔 통상적으로 면책특권을 가진 의원을 통해 본회의나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폭로가 이뤄진다.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형사처벌되지 않기 위해서다.

또 의혹 관련 정보를 언론에 전달해 보도의 형식으로 폭로가 이뤄지기도 하고, 사건 관계자를 설득해 기자회견장에 세우는 경우도 있다.

대선이 끝나면 네거티브 공세도 자취를 감춘다. 정의를 세우고 법적인 책임을 지게 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선이 끝난 뒤 네거티브 공세를 주도한 사람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2002년 대선이 끝난 뒤 병풍(兵風) 의혹을 제기했던 김대업 씨가 구속된 게 대표적 사례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1급 정보맨’의 하루

국회의 ‘정보맨’ 중에서도 ‘선수’로 통하는 보좌관 A 씨는 오전 10시 평소 경찰 측 정보에 정통한 한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최근 구속된 B 씨가 대선 후보의 비리 의혹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돈을 받고 팔기도 하고 정부기관에 넘기기도 했다는데 알고 있는 얘긴가.”

A 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검찰 및 국가정보원 측의 정보에 밝은 인사 2명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부탁했다. 통화는 최근 다른 사람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로 했다. A 씨는 휴대전화를 3개나 가지고 있다.

A 씨는 “요즘 휴대전화 통화를 하다보면 자꾸 잡음이 섞인다. 통신회사에 연락해 이유를 물어봐도 ‘알 수 없다’는 대답뿐이다. 누군가 도청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국회 근처의 한 일식당에서 금융 정보에 밝은 인사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이 인사는 서울 여의도의 한 정부투자기관에 근무한다.

두 사람은 이날 주로 BBK주가조작 사건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처남의 주가조작 사건 연루의혹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두 사건을 모두 파악한 이유는 각각 공격과 방어를 하기 위해서였다.

오후 3시경 이날 오전에 부탁했던 ‘B 씨의 정보 거래설’ 확인 요청에 대한 답신이 왔다. 이를 처음 전화를 받은 인사에게 전달해줬다.

그는 오후 4시경 이날 입수한 정보를 정리한 보고서를 의원에게 전달한 뒤 자신이 속한 당 선대위의 비리 의혹 관련 팀장에게 e메일로 보냈다. 또 보고서에 정리한 내용 중 신빙성이 높은 것들을 추려 관련 정부 부처 및 기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도록 비서관에게 지시했다.

A 씨는 이날 오후 7시경 당사에서 열린 비리 의혹 공략 및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오후 팀장에게 보냈던 e메일 내용을 토대로 다른 팀원들에게 추가 확인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

A 씨는 오후 10시경 서울 서초동의 한 술집에서 법조계 사정에 밝은 인사를 만나 BBK주가조작 사건의 검찰 수사 준비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 귀가한 시간은 다음 날 오전 1시를 넘겼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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