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태도… 측근 부채질… ‘說’ 부추겨

  • 입력 2007년 10월 26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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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날 선포식 참석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앞줄 오른쪽)가 25일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에서 열린 ‘독도의 날 제정 선포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원대연  기자
독도의 날 선포식 참석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앞줄 오른쪽)가 25일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에서 열린 ‘독도의 날 제정 선포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원대연 기자
“대선행보 시작” “아니다” 한나라 진의파악 분주

“당내 경선주자들에 대한 섭섭함 표현 일수도”

“(불출마한다는) 종전 태도에서 변화가 없다.”(23일)→“나중에 이야기하자.”(24일)→“아직까지 종전 태도에 변함이 없다.”(25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최근 불거진 자신의 대선 출마설에 대해 23일부터 매일 한 차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25일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에서 열린 ‘독도의 날 제정 선포식’에서 이 전 총재는 “종전 태도에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라는 단서를 달았다. 1월 1일 밝힌 대선 불출마 선언이 아직까지는 유효하지만 이후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애매한 태도와 이 전 총재 측근들의 대선 재출마 촉구가 맞물리면서 이 전 총재의 ‘대권 3수(修) 도전설’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VS ‘자기 과시용일 뿐’=한나라당 안팎에서는 이 전 총재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이 전 총재 측근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 전 총재는 대권의 ‘꿈’을 아직 접지 못했다고 한다. 당 일각에서는 이 전 총재가 대선 행보를 이미 시작했다는 정황까지 내놓고 있다.

최근 지난 대선에서 이 전 총재를 도왔던 L 씨 등에게 이 전 총재가 직접 ‘도와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얘기, 옛 후원회 조직인 일명 ‘부국팀’ 멤버들이 다시 뭉쳐 이 전 총재의 전국 투어 일정을 짜고 있다는 설, 이 전 총재와 박근혜 전 대표 측 인사가 이회창-박근혜 연대를 추진하고 있다는 말 등이다. 24일 열린 ‘대한민국 사수 국민대회’를 앞두고는 이 전 총재가 H 씨에게 참석자를 동원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 전 총재는 2주 전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데 이어 23일에는 서빙고동 자택에서 강삼재 전 사무총장을 면담하는 등 과거 대선에서 자신을 보좌했던 인사들을 잇달아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전 총재가 정말 출마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이 전 총재를 잘 안다는 사람들은 “출마까지야 하겠느냐”면서 “이 전 총재가 그동안 한나라당과 경선 주자들에게 섭섭했던 것이 많았고 그래서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의 측근이었던 인사는 “이 전 총재는 대단히 신중한 분으로 출마를 쉽게 결정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온갖 설이 난무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 전 총재가 출마 여부를 딱 부러지게 밝히지 않는 탓이다.


영상취재: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당초 이 전 총재 출마설은 이명박 대선 후보의 중도 낙마 가능성에서 비롯됐다. 범여권의 네거티브 공세로 이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게 될 경우 대안으로 이 전 총재가 나설 것이란 얘기다. 이 전 총재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이 전 총재는 이 후보가 결정적 흠이 있기 때문에 결국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며 “그럴 경우 좌파정권 종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본인이 마음을 접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회창과 이명박=이 전 총재는 지난해 10월 ‘특강 정치’로 사실상 정치 행보를 재개하면서 이 후보의 잠재적 경쟁 상대가 됐다. 이후 이 전 총재는 각종 연설에서 이 후보를 겨냥해 “나도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네거티브에 당했다” “경제만으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 경선 중반 경선 룰을 두고 이 후보와 박 전 대표가 대립하자 중재자로 나서기도 했으나 이 후보 승리 이후 선대위 상임고문직 제의 여부를 둘러싸고 관계가 급속 냉각됐다. 이 후보는 인터뷰에서 “(이 전 총재에게) 상임고문직을 제안한 적이 없다”고 말했으나 이 전 총재는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 되겠느냐”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이 전 총재의 말말말=이 전 총재는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12월에는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주최 ‘한나라 포럼’에서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수수와 관련해 “당에 고통과 깊은 상처를 안겼다. 잘못된 일이고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했다.

그는 2007년 첫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내 처지에서 대선을 놓고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현실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 불출마 선언을 했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한나라 “괜한 자극 말자”

공격적 논평-발언 자제

박근혜측선 “관심 없다”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설이 끊이지 않자 한나라당이 내부적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 전 총재가 모호한 발언을 계속하며 ‘출마설 띄우기’를 하자 이명박 대선 후보 주변에서 비판 기류가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25일 “(1997년) 이인제 의원 때문에 표가 갈려 낙선한 사람이 제2의 이인제가 되겠다는 것이냐. 두 차례 선거에서 패하고 불법 선거자금으로 당을 망가뜨린 장본인이 어떻게 출마 운운할 수 있느냐”고 성토했다.

하지만 이 전 총재의 출마설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공개적 논평이나 발언을 하지 않는 ‘무대응 전략’을 쓰고 있다. 이 전 총재와 지지 세력을 자극할 필요가 없는 데다 출마를 선언하더라도 지지율이 5% 안팎에 그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이 전 총재가 출마해도 대선 판에 큰 변수는 되지 못할 것”이라며 “이 전 총재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대권 노망이 든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당내 일부 남아 있는 이 전 총재 측근들도 그의 출마에 대해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이 전 총재의 출마설에 “관심 없다”는 태도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박 전 대표의 팬클럽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과 이 전 총재의 팬클럽 ‘창사랑’이 연대를 추진하는 것도 박 전 대표 측 기류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박사모의 행동은 박 전 대표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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