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북핵 해결, 희망가는 높지만

  • 입력 2007년 7월 1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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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선 6자회담이 다시 열린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등 2·13합의의 초기 조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핵 프로그램 신고와 불능화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6자회담의 발목을 잡았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자금 처리 문제가 해결된 뒤 한반도 비핵화 논의는 바야흐로 급류를 타고 있다.

최근 상황을 보면 북한이 지난해 10월 9일 핵실험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일이 과연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11일 연감에서 북한을 처음으로 핵보유국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사실상 흐지부지됐고 대북 지원을 위한 남한의 곳간은 다시 활짝 열렸다. 대미 관계 개선이라는 북한의 숙원(宿願)도 머지않아 풀릴지 모른다.

북한 경제와 주민의 삶을 피폐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오로지 핵개발에 ‘다걸기’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득의만면한 표정이 상상이 간다. 자칫하면 북한이 망할 수도 있었던 핵실험 도박으로 오히려 살길을 찾았으니 얼마나 의기양양하겠는가. 양제츠(楊潔지) 중국 외교부장을 3일 접견하면서 “최근 한반도 정세가 약간 완화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 것은 그가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은 미국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11일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내에 모든 것을 마무리 짓고 싶다”고 말했다.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북-미 수교 등을 다 끝내고 싶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는 북한을 협상의 상대로 인정했으며 더는 정권 교체를 시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국과 중국의 반대로 대북 압박이 여의치 않은 데 따른 고육책이겠지만 북한의 행태를 뻔히 잘 알면서 어떻게 그런 장밋빛 청사진을 펼칠 수 있는지 의아하다.

북-미 관계에 서광이 비쳤던 시기는 전에도 있었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 때 그랬고 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때도 그랬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결국 다시 꼬였다. 북한이 미국을 속이고 몰래 핵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의 퇴임(2009년 1월) 때까지 약 1년 반 남았다. 북한이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6자회담만 해도 2003년 8월 첫 회담부터 올해 2·13합의까지 3년 반이 걸렸다. 이에 앞서 미국은 1996년 4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4년 7개월간 북한과 미사일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합의를 보지 못했다. 하물며 동맹인 한미가 상생을 추구하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하는 데도 약 1년 5개월(재협상 포함)이 걸리는 실정이다.

범여권에선 남북 정상회담설이 끊이지 않고 한나라당마저 느닷없이 대북 경협·지원과 핵 폐기 요구를 더는 연계하지 않겠다고 하는 판이지만 그럴수록 냉정히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마치 북핵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바람을 잡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을 호도하는 정치 쇼일 뿐이다. 산도 높고 골도 깊은 게 대북 협상이다. 국민은 진실을 안다.

한기흥 국제부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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