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안’이라면서 결과는 보고 안했다?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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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5급 직원 K 씨가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처남 김재정(58) 씨의 부동산 보유 현황 전산 기록을 조회한 목적은 뭘까.

국정원은 13일 “부동산 투기 의혹 조사를 위해서”라고 해명했지만 야당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정치 사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등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투기 의혹 조사를 위해 김 씨 외에 이 전 시장과 측근 등의 부동산 기록은 조회하지 않았는지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김 씨의 부동산을 조사한 것인지 △K 씨가 부동산 기록 조회에 착수한 근거라고 밝힌 첩보 입수 과정엔 문제가 없는지 △부동산 비리 조사 목적 외에 다른 의도는 없었는지 △첩보를 입수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실제 조사를 한 이유는 뭔지 △부동산 기록이 국정원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은 없는지 △부동산 기록 외에 금융계좌를 조사하지는 않았는지 등 7대 의혹을 점검해 본다.》

①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나

국정원은 “(K 씨의) 직속 과장이 (K 씨에게) ‘예민한 사안이므로 무리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내에서 당시 잠재적인 대선주자였던 이 전 시장의 처남 김 씨의 부동산 보유 현황에 대한 조사가 정치적으로 미칠 파장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이다.

게다가 국정원에 따르면 K 씨는 김 씨의 부동산 자료를 조회한 뒤 그 결과를 직속 과장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

그러나 ‘예민한 사안’이라고 주의까지 줬던 직속 과장이 K 씨에게 자료 조회 결과를 묻지 않았는지, 또 과장은 자신의 상급

자에게 K 씨의 자료 조회 사실을 보고하지않았는지 등 의혹의 실체가 규명돼야 한다.

정치권에선 국정원이 상층부로 의혹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K 씨가 부동산 자료 조회 결과를 상부에 전혀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하고 넘어가는 쪽으로 몰아가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②이 전 시장 부동산 기록은 조회하지 않았나

40대인 K 씨는 국정원의 부패척결 태스크포스(TF)에 소속돼 공직자의 부동산 비리 조사 업무를 담당하면서 ‘대검찰청 인근 서초동 부동산의 명의인이 이 전 시장의 처남 또는 측근’이며 ‘이 부동산 명의인의 체납 건강보험료가 이 시장 계좌에 이체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게 국정원의 중간조사 결과다.

이에 따라 K 씨는 행정자치부를 통해 이전 시장의 처남 김재정 씨의 부동산 자료를 조회했으나 이 전 시장 부동산의 차명 은닉

의혹을 입증할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조사를 중단하고 자료를 폐기했다는 것.

그러나 K 씨의 업무는 공직자의 부동산 비리 조사였기 때문에 조사의 초점은 이 전 시장에게 맞춰져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따라서 K 씨가 김 씨의 부동산 외에 이전 시장의 부동산 보유 현황이나 거래 내용까지 조회했는지 여부가 검찰 수사 등을 통

해 확인돼야 한다.

③첩보 입수 및 확인 절차는 타당했나

국정원에 따르면 K 씨는 이 전 시장의 부동산 비리 의혹 첩보를 평소 친분이 있던 김모 씨에게서 들었고, 김 씨는 이 내용을

구청장 5, 6명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K 씨는 이 첩보의 진위를 다시 구청장들에게 확인하지 않은 채 직속과장에게 보고한 뒤 행정자치부에 김 씨의 부동

산 자료 조회를 신청한 것. 통상 정보기관이 첩보 입수 후 사실 관계를 분명하게 확인한 뒤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상부에 보고하고 조사에 착수하는 관례에 비춰 보면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수사 기관의 한 고위 간부는 “일선 경찰지구대의 첩보도 아니고 정보기관의 직원이 첩보의 신빙성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상급자에게 그 내용을 그대로 보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이 이 전 시장의 비리의혹을 찾아내는 데 몰두하다가 첩보의 신빙성 여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정부 전산망 자료에 접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④왜 행자부 자료부터 뒤졌을까

이 전 시장은 서울시장 재직 시 공직자 재산신고를 하면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단지 내 건물 2채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K 씨가 입수한 첩보를 종합하면 ‘이 전 시장이 서초동의 대검찰청 인근 부동산을 처남이나 측근 명의로 보유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K 씨는 우선 이 전 시장의 재산신고 내용을 첩보의 내용과 비교 확인하는 게 가장 쉽고 빠른 조사 방식이었다는 게 부동산 전문

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국정원에 따르면 K 씨는 이런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않고 행자부에 김 씨의 부동산 자료 조회를 요청했다.

만약 첩보의 부동산이 이 전 시장이 보유한 건물 2채와 동일한 것이었다면 해당 건물의 등기부등본이나 관보의 공직자 재산 공

개 내용만 확인했더라도 쉽게 이 건물 2채가 이 전 시장 본인 명의로 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김 씨의 부동산 거래 내용은 대부분 지금부터 15년 이전인 1982∼1991년 10년간 전국 47곳의 땅을 구입한 것이다. 1991년 이후 거래한 부동산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1992년)과 아파트 2채(각 2002, 2003년)만 알려져 있다.

공직자였던 이 전 시장의 부동산 비리를 파헤치기 위한 목적으로 과거에 부동산 거래가 많은 김 씨의 부동산 보유 현황을 확인한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K 씨가 대선을 1년여 남겨둔 시점에서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선 주자인 이 전 시장에게 초점을 맞춰 김 씨의 부동산 기록을 조회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지난해 9월 추석 연휴가 지난 뒤 여론조사 지지율이 35%대로 뛰어오르며 확실한 대선 후보 반열에 올랐다.

⑤첩보 입수부터 조회까지 4개월 걸린 이유는

국정원은 K 씨가 지난해 4월 첩보를 입수해 6월에 직속 과장에게 보고를 하고, 8월에행자부를 통해 이 전 시장 처남 김 씨의 부동산 기록을 조회했다고 밝혔다.

왜 첩보 입수부터 자료 조회까지 4개월이나 걸렸을까.

한나라당에선 이 전 시장 주변에 대한 전반적이고 조직적인 조사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4개월이나 소요된 것 아니

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지난해 8월 이미 임기(지난해 6월 30일까지)가 끝난 이 전 시장 관련 자료를 열람해놓고 재임 때 첩보를 입수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첩보 입수 시점을 4월로 앞당긴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 전 시장 주변에선 국정원이 이 전 시장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 등을 따져보며 대선주자가 될 것인지 여부를 가늠하

다가 지지율이 올라가자 부동산 기록 조회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⑥기록의 외부 유출 가능성은

국정원은 K 씨가 기록을 조회하긴 했지만이를 출력하지는 않았고 e메일 내용을 조사한 결과 전송 기록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만약 K 씨가 조회한 기록을 메모했다면 이 내용을 정치권이나 일부 언론사등 국정원 외부로 유출했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에선 최근 일부 언론에 김 씨의 부동산 보유 현황이 자세히 보도될 수 있었던 배경에 국정원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K 씨가 직접 메모 기록을 국정원 외부 인사에게 전달했거나, K 씨에게서 메모 내용을 전달받은 상급자 등 다른 국정원 직원이 이를 외부로 빼돌렸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⑦행자부 기록만 조회하고 조사를 접었나

국정원은 “A 직원(K 씨)이 행자부의 부동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동산 차명 은닉 등 핵심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자료도 파기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K 씨가 국세청 등을 통해 거래 내용을 추가로 확인했을 가능성과 다른 목적으로 김 씨의 부동산 보유 현황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2004년 5월부터 부패척결 TF에 소속돼 2년 가까이 부동산비리를 수집했던 K 씨가 행자부 자료만을 근거로 조사를 그만뒀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정원은 이날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서 K 씨가 입수한 첩보 내용에 ‘서울 서초구서초동 부동산 명의인의 체납 건강보험료

가 이 전 시장 계좌에서 이체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K 씨가 첩보에 따라 이 전 시장 문제에 대해 조사를 했다면 당연히 이 계좌에 대한조사도 병행했어야 했지만 국정원은 이 부

분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국정원 발표대로라면 K 씨는 직속과장에게 보고한 내용 중에서 서초동 건물 부분만 조사하고 다른 부분은 자기 판단에 의해

조사를 하지 않은 셈이다.

5급 직원이 상사에게 보고까지 한 내용 중에서 조사 대상을 임의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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