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태원]北초대장도 못 받으면서 ‘성숙한 관계’라니

  • 입력 2007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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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후 남북 당국의 대표들은 모두 194회에 걸쳐 각종 회담을 했다. 장관급 회담이 21차례 열렸고 군사 분야의 회담이 40차례,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등 경제 분야 회담이 76차례 진행됐다.

남북간 하늘길, 바닷길, 땅길, 철길이 모두 열렸고 2000년 이전 연 5000∼6000명에 불과하던 남북 왕래 인원도 지난해 10만 명을 넘어섰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하다.

1일 끝난 제21차 장관급 회담에서도 남측은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한 단계 높은 평화, 한 차원 넓은 협력을 실현하자”고 제안했고 북측은 “남북관계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공동의 이정표를 마련해 나가자”고 화답했다.

그러나 남북은 방법론에 있어선 동상이몽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북측이 남북관계가 질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근본문제’의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11일 “법적·제도적 장애물 제거와 같은 원칙적,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남북관계에) 새로운 합의는 물론 이전에 합의한 것도 이행하기 어려운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보도한 것만 해도 그렇다.

남북 당국은 7년간의 회담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수준의 상호 신뢰도 아직 구축하지 못한 상태다. 14∼17일 평양에서 열리는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 기념 통일대축전 행사에 남측 당국대표단이 불참하기로 결정한 과정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준다.

남측 대표단의 6·15행사 참가는 3월 제20차 장관급 회담의 합의 사항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북측은 남측의 쌀 차관 제공 보류에 심통이 난 탓인지 11일까지 초청 여부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고 기다리다 지친 남측은 결국 ‘불참’을 선언했다.

예정된 행사에 초대를 못하게 될 경우 사전에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게 세상사의 예의다. 그런데도 북측은 툭하면 몽니를 부리고 남측은 이에 제대로 항의도 못하는 게 현재의 남북관계다.

그럼에도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그간의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쌍방의 신뢰가 더욱 증진되고 남북관계가 한층 성숙해졌다”고 말한다. 북측의 무례한 행태에 당하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고 남북관계가 발전할까.

하태원 정치부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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