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盧 ‘이해찬 프로젝트’ 수면위로?

  • 입력 2007년 6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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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장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3월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귀빈실로 향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장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3월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귀빈실로 향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12일 낮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가까운 한 의원이 기자들에게 “이 전 총리가 대선 출마 결심을 굳혔다”며 19일경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전 총리 측은 “전혀 의도한 게 아니다”고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워 온 김 전 의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이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사실이 공개된 배경을 놓고 갖가지 해석과 관측이 분분하다.

○ DJ 노선과 노무현 노선의 융합 카드?

범여권 핵심부에서 ‘노무현 노선’과 ‘김대중 노선’을 합칠 수 있는 카드로 ‘이해찬 대안론’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도는 가운데 ‘이해찬 띄우기’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듯한 정황도 보인다. 물론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상호 합의하에 ‘이해찬 띄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증거는 없지만 이 전 총리의 궤적은 심상치 않다.

이 전 총리는 3월 방북에 이어 5월 미국을 방문한 뒤 4개국 정상회의론을 제기했다. 또 7·4남북공동선언 35주년에 맞춰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 소속 의원 20여 명과 각계 인사 100∼15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방북단을 구성해 개성에서 열리는 대토론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 전 총리가 8·15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막후 접촉을 하고 있다는 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한다는 점과 노 대통령 임기 중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전현직 대통령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카드다. 이 전 총리의 노력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이 전 총리는 노 대통령과 DJ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셈이다.

이 전 총리는 지난달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인 8일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총리는 “내가 (대선에) 나가겠다”며 대선 출마 의향을 처음으로 밝혔다고 한다.

당시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4월 27일 노 대통령과의 독대 후 노 대통령에 대해 각을 세우며 현 정부의 국정실패론을 주장하고 나서는 등 열린우리당이 대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실제 이 전 총리는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대선후보 지위를 갖고 통합 문제 등 당의 진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겠다”며 대선 출마 선언을 준비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연기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총리는 방북 결과를 설명한다는 이유로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저로 DJ를 방문했다. 이때 DJ는 “이 전 총리가 책임지고 범여권 대통합을 실현시키라”고 말했다.

이런 정황과 맞물리면서 정치권에서는 이 전 총리가 대선에 출마하기로 최종 결심을 한 데는 DJ와 노 대통령의 암묵적 동의가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범여권 진영은 크게 DJ 노선과 노무현 노선으로 대별돼 있다. DJ는 전통적인 호남 지지층을 바탕으로 서부벨트(호남+충청)를 복원해 대선에 대비하자며 대통합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노 대통령은 ‘합리적 진보’ 노선을 강조하며 영남을 깰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DJ 노선과 노무현 노선은 힘겨루기를 하다 결국 하나로 통합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바로 그 통합의 지점에 이 전 총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전 총리는 DJ 정부에서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내는 등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고, 참여정부에서는 ‘실세 총리’를 지냈다.

DJ 노선과 노무현 노선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두 진영의 지지층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카드라는 것이다.

이 밖에 범여권 일각에서는 역대 어느 대선 못지않게 충청권의 역할이 주목되는 상황에서 충남 청양 출신인 이 전 총리가 호남과 충청을 잇는 ‘서부벨트’ 복원의 적임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 도상 시나리오?

그러나 ‘이해찬 대망론’은 도상(圖上) 시나리오에 불과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DJ와 노 대통령이 합의할 수 있는 후보, DJ 지지층과 노무현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는 후보, 한나라당 후보와 정책대결을 할 수 있는 후보, 충청 출신으로 서부벨트를 복원할 수 있는 후보라는 점 등을 놓고 보면 ‘파괴력’이 있을 법도 하지만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부산지역 기업인들과의 3·1절 골프 파문이 터졌을 때 “별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버티다가 뒤늦게 불명예 낙마한 것이나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의원들에게 호통을 치던 기억이 국민에게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다.

대중성이 없다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사실 이 전 총리는 스스로도 대선에 어울리는 정치인이 아니라고 말해 왔다.

노 대통령의 ‘대리인’ 이미지는 친노 세력을 결집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국민 지지를 얻는 데는 부정적 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전 총리 스스로도 대선 출마 결심을 굳히기 전 사석에서 “국민은 나를 ‘업그레이드된 노무현’으로 인식하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이 전 총리의 대선 승부수는 향후 범여권 진영의 대통합 문제와 직결돼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전 총리는 DJ 세력과 노무현 세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열린우리당의 한 전략통 의원은 “친노 진영은 일단 이 전 총리 흐름으로 가는 것 같다. 이 전 총리가 DJ와도 가깝지만 열린우리당 판에 남아 있다면 DJ와 가까운 건 아무 소용도 없다. 결국 판의 문제다. 민주당과 판이 합쳐지지 않으면 DJ와 가까운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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