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추위 ‘불안한’ 합의…작년 열차운행 군부반대로 무산

  • 입력 2007년 4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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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서 교환22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린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남측 단장인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왼쪽)과 북측 단장인 주동찬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이 합의서를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합의서 교환
22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린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남측 단장인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왼쪽)과 북측 단장인 주동찬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이 합의서를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정부는 22일 평양에서 끝난 제13차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쌀 차관 40만 t(1억5200만 달러 상당)과 북한의 경공업 원자재(8000만 달러 상당) 제공을 매개로 남북 관계의 진전을 모색했다.

외형상 정부는 쌀 차관 제공을 ‘2·13합의’에 따른 초기 조치 이행에, 경공업 원자재 지원은 경의선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 성사에 각각 연계시킴으로써 이 같은 지원이 일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추위 합의가 실행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북한의 2·13합의 이행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불안하고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합의문에 ‘대북지원은 북한의 핵 폐기를 위한 초기 조치 이행 여부와 연계한다’는 대목이 일언반구도 들어 있지 않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가시적 성과로 꼽히는 열차 시험운행도 군사적 보장 조치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북한 군부의 보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여서 낙관하기는 이르다.

▽열차 이번에는 운행되나?=북측 언론 매체는 22일 경추위에서 5월 17일 남북열차 시험운행에 대해 합의한 사실을 전했지만 군사적 보장 조치를 취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대목은 소개하지 않았다.

합의문에 명시한 ‘군사적 보장 조치를 위한 적극 협력’이 남측을 위한 ‘립 서비스’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북한은 지난해에도 5월 25일 열차 시험운행에 합의하고도 행사 전날 군부의 반대를 이유로 무산시킨 전력이 있다.

남측 대표단은 이번 회담에서 군사적 보장 부분에 대한 확답을 얻기 위해 회담 시한을 하루 연장하면서까지 북측을 압박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 수석대표인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북측 경추위 당국자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북측 핵심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라고 말해 애초부터 이번 회담에서 북측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털어 놓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올해만큼은 시범운행이 예정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열차 시험운행은 경공업-지하자원 협력과 구조적으로 연계돼 있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며 “지난번 장관급회담에서도 북측이 열의를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측 경추위 대표들이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은 전형적인 핑계라는 지적도 있다. 이미 1년 전에 합의했던 시범운행이고 지난달 제20차 장관급회담에서도 “군사적 보장 조치가 취해지는 데에 따라 올해 상반기 안으로 열차시험운행을 실시한다”고 합의했는데도 군부의 동의를 받아오지 않은 것은 북측의 의지 부족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어렵사리 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진다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일회성 행사일 뿐 전면 개통이 아니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쌀 지원을 2·13합의 이행과 연계 했다는데…=북한에 대한 2·13합의 이행 촉구가 구두로만 이뤄진 것은 회담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합의문에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서상으로 볼 때 남측은 아무런 조건 없이 북측에 쌀 40만 t의 식량차관을 제공하는 데 합의한 셈이 됐다. 실제로 합의문 9항에는 “남측은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쌀 40만 t을 제공한다”고만 명시하고 있다.

진동수 재경부 제2차관은 “합의문에 3월의 제20차 장관급회담에서 합의했던 것처럼 ‘2·13합의를 원만히 이행하도록 노력한다’는 대목을 넣자고 주장했지만 북측의 반발이 거셌다”고 말했다.

진 차관은 “북한이 2·13합의를 지키겠다고 대외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경협의 틀을 깨는 것보다는 남북 관계를 끌고 가면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 식량차관 제공에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남북 관계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북한이 2·13합의를 이행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를 근거로 쌀 지원에 합의한 셈이다.

정부가 북한에 제공하는 쌀 차관은 t당 380달러씩 모두 1억5200만 달러가 든다. 차관 조건은 10년 거치 30년 상환으로 연리 1.0%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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