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놀이 구경만 할 수 없다” 국정원 인사 급거 중국으로

  • 입력 2007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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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대북접촉 공식-비선라인 피말리는 싸움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7월 5일)와 핵실험(10월 9일)으로 통일부 국가정보원으로 대표되는 대북 ‘공식라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비선(秘線)라인’은 특사 교환과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빅 카드’를 추진하는 호기를 맞았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12월 말을 전후해 비선을 접고 공식라인으로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기로 ‘교통정리’를 했다.

공식라인의 막판 뒤집기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최고의 ‘대북 전문가’라는 평을 들어 온 서훈 국정원 3차장의 역할 때문에 성사될 수 있었다.

▽비선의 약진과 국정원의 반격=차장으로의 승진이 이미 확정됐던 지난해 11월 19일 서훈 당시 대북전략국장(8국장)은 실무자급으로 격(格)이 한참 떨어지는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이호남 참사를 만나기 위해 중국 단둥(丹東)으로 날아갔다.

‘비선 접촉’을 기획했던 대북사업가 권오홍(47) 씨는 비망록에서 “단둥에서는 한판 전쟁이 벌어진 모양이다. S(서훈 차장) 라인은 기를 쓰고 이 일을 따내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크게 베팅을 하러 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아마도 어떤 수준의 약속을 하고 자신들의 라인을 회복해서 더 많은 일을 하자고 할 듯하다”고 기록했다. 대북 접촉의 주도권을 찾으려는 서 차장의 움직임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비망록은 북측 인사들의 전언을 근거로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쌀과 비료 지원을 대가로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는 시도를 했다”며 “1월 25∼28일 평양과 이 같은 내용에 잠정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남북은 2월 27일∼3월 2일 평양에서 열린 제20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비료 30만 t 지원과 쌀 40만∼50만 t 지원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국정원 측은 서 차장과 이 참사의 만남을 부인했다. 국정원 측은 “이호남이 1997년 북풍(北風) 사건에도 개입했던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국 차원에서 접촉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라며 “3차장이 만날 만한 비중의 사람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공식라인의 승리=단둥 접촉 이후 국정원은 비선라인과의 주도권 경쟁에서 서서히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방북 후 ‘돼지농장’ 사업을 추진하던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에게 ‘속도 조절’을 요청하는 한편 청와대에 보고서를 올려 ‘비선 추진’의 문제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다행스럽게도 국제정세는 ‘공식라인’의 편이었다. 북한은 미국 중국과의 3자 회동을 통해 지난해 12월 18일 6자회담에 복귀했고, 1월 17일에는 독일 베를린 북-미 양자접촉을 통해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문제 해결과 60일 내 핵시설 폐쇄 봉인에 사실상 합의했다.

2월 15일에는 남북이 장관급회담을 열기로 합의해 남북관계도 복원됐다.

이 같은 ‘정세 변화’ 속에 국정원은 ‘S 라인’의 완전 복원에 성공했고 비선라인을 성공적으로 제어할 수도 있었다.

권 씨는 비망록에서 “혈전(血戰)이다. 이제는 (평양이) 둘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 되어 버렸다. 이쪽이 ‘드롭’(그만둔다는 의미)하면 그쪽으로 가는 그런 국면이 온 것이다”라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핵 문제로 남측이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 사례”라며 “참사급 수준에서 청와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북측이 남측을 한 수 아래로 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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