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진보학계의 ‘정부 무능론’ 확산에 맞불

  • 입력 2007년 2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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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으로부터 ‘386 얼치기 정권’으로 매도당하는 데 대한 야속함을 표현한 것 아니겠느냐.”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진보진영을 공개 비판한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브리핑 글에 대해 19일 이렇게 말했다.

▽“진보진영의 정부 비판 위험수위”=노 대통령은 이 글에서 진보진영 학자들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참여정부를 매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분”이라고 흐렸다. 그러나 그 화살은 진보학계의 리더 격인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겨냥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노 대통령이 “현 정부는 책임 모면이나 ‘알리바이’를 위해 지역주의나 언론 이야기를 한 일이 없다”고 주장한 것도 최 교수가 지난해 9월 특별강연에서 “권력을 갖고도 언론 탓을 하는 것은 실패의 알리바이일 뿐”이라고 한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진보진영의 대정부 비판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 취임 4주년을 맞아 진보진영의 각종 세미나에서 ‘참여정부 때문에 한나라당에 정권을 바치게 됐다’는 내용이 단골 주제가 되고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며 “이를 좌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의 진보진영 비판은 지지층을 의식한 ‘담론 투쟁’의 성격이 짙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 내부에서 ‘민주세력 무능론’과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도 좋다’는 담론이 확산될 경우 범여권의 세 결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보진영과의 갈등 사례=현 정부와 진보진영이 첨예하게 맞붙은 주요 정책 쟁점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비롯해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경기 평택 이전, 이라크 파병 결정 등이 있다.

노 대통령은 이들 이슈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진보진영 일부의 평택기지 건설 반대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과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그것이 과연 타당한 일이고 가능한 일인가. 국제정치의 현실도 현실이지만 국내 사정으로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진보진영만 사는 나라인가”라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노 정권은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었다’는 주장은 주관적인 평가다.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이다”라고 반론을 폈다.

노 대통령은 또 FTA 협상에 대해선 “세계 시장이 하나로 통하는 방향으로 가는 시대의 대세는 중국 지도자들도 거역하지 못한 일”이라며 개방 불가론을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 협상 추진에 대해 무척 고민했다”며 “대통령은 진보진영을 향해 껍질을 깨는 아픔을 얘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참여정부가 ‘유연한 진보’?=노 대통령은 진보진영을 비판하면서 참여정부의 노선에 대해 “‘유연한 진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과거사 정리와 주류세력 교체에 국력을 쏟는 바람에 경제 노동 사회복지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연한 진보’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시장개방 문제에 대해 “이념이 아닌 현실적 효용성의 문제”라며 진보진영의 한미 FTA 반대 등을 비판했다. 하지만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참여정부는 전체적으론 개방과 시장주의를 일부 수용했지만 이보다 형평 등의 가치를 더 중시하고 우선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세력 무능론’에 대해 노 대통령은 “민주진영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반박했지만 이는 논리 비약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아마추어리즘과 이념적 경직성에 빠져 코드 인사 및 부동산 정책 등 각종 실정을 부른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민주화 세력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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