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핵 실험까지 한 마당에…” 시큰둥

  • 입력 2007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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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北 ‘중유 50만 t 지원’ 놓고 줄다리기

6자회담이 시작되기 전에는 쉽게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핵심 쟁점은 북한이 핵시설을 폐쇄하는 대신 이에 상응해 북한에 제공할 에너지의 규모와 비용 분담, 시한 문제 등이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북한과 다른 회담 참가국들 사이에 대북 에너지 제공 규모의 적정량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북한이 핵시설의 재가동을 위한 정비를 허용하는 ‘동결(freeze)’이 아닌 정비 작업을 못 하도록 시설을 봉쇄하는 ‘폐쇄(shutdown)’ 조치를 취하기로 동의했지만 그 대가로 요구한 ‘연간 50만 t 이상의 중유’가 너무 많다는 게 미국 일본 등의 판단이다.

미국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핵 동결의 대가로 연간 50만 t의 중유를 제공하기로 합의하고 8년간 이를 이행했지만 북한은 핵 폐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이 지난해 10월 핵실험까지 했기 때문에 제네바 합의와 비슷한 규모의 에너지 제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북한은 ‘동결’보다 비핵화 조치의 수위가 높은 ‘폐쇄’ 조치를 이행하기로 했고 2003년부터 지금까지 중유 제공을 못 받았기 때문에 제네바 합의를 통해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중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연간 50만 t의 중유’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제공하면 ‘폐쇄→신고→폐기’의 단계로 진행되는 비핵화 조치에서 ‘폐쇄’보다 진전된 조치를 이행할 수 있다는 자세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11일 기자들과 만나 에너지 제공 규모 산정 문제에 대해 “워킹그룹을 구성해 논의해야 할 이슈가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한국은 북한이 연간 50만 t 이상의 중유를 받으려면 비핵화 조치의 폭을 넓히고 속도를 높이는 조치를 취하거나 이를 보장해 다른 회담 참가국들의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 수석대표인 천영우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이 취할 비핵화 조치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에너지 제공량을 나타내는) 숫자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미국과 일본, 중국은 한국이 대북 에너지 제공을 주도하기를 바라고 있어 비용 분담 문제도 걸림돌이 될 듯하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2개월 안에 핵시설을 폐쇄하고 한국은 중유를 제공하며 미국은 관계정상화 논의를 시작하는 쪽으로 회담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모두 비용 분담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다만 비용을 모두 동일하게 분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만약 미국 일본 중국이 비용의 대부분을 한국에 떠넘기려고 할 경우 한국의 태도에 따라 회담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

배이징=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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