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북 핵실험 뒤 ‘美동맹 중 최악’ 인상 줬다”

  • 입력 2007년 1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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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악화된 한미동맹 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국 간 주요 현안에 대해 솔직하고 투명한 논의 절차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나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 등 최근 한미 관계에서 논란이 되는 대부분의 사안은 본질적인 내용보다는 그 사안이 논의되고 협의되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의사소통 방식의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고 말했다. 또 인적 네트워크 활용을 제언하면서 “한국적인 시각과 방법으로만 접근할 경우 의사소통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마찰을 빚을 우려가 있으니 미국인의 인식과 사고방식, 문화 등에 익숙한 전문가 집단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미동맹

워싱턴 소재 한국경제연구소(KEI)의 찰스 프리처드 소장은 “최근 미국이 한국 정부에 대해 노여움(irritation)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유엔헌장 7장 42조(무력 사용)를 원용한 (대북 제재)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봐도 되는데 한국이 그 가능성을 거론하며 미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불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유명 로펌인 애킨 검프의 김석한 변호사(매니징 파트너)는 “핵실험 후 미국의 동맹국 중 가장 인상이 안 좋은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라며 “한국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할 뿐만 아니라 북한 편을 들고 미국의 주요 정책을 약화시킨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한미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보다는 미국의 ‘실세’를 만나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데릭 미첼 선임연구원은 “일본과는 1990년대에 이 문제(동맹의 미래)에 대해 깊게 논의했으나 한국과는 그러지 못했다. 한미 관계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동서연구소의 휴고 휘국 김(김휘국) 소장은 “한미 관계가 멀어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면서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캠프가 반미 코드를 활용한 것은 한미 관계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국인에게 한국 젊은층은 반미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무부 부대변인을 지낸 앨런 롬버그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위원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미 관계가 ‘복원 가능(restorable)’하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도 북한을 보는 한미의 시각이 너무 다르다고 지적했다.

●북한 핵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아시아안보센터 소장은 “김정일은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장기적으로 (북한의) 체제 전환을 시도하는 한편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확산 또는 이전의 차단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에서 대중 봉기나 정권 내 쿠데타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북한의 붕괴나 경착륙(hard landing)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했다.

롬버그 선임연구위원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북한 정책은 정체 상태(stuck)”라고 지적했다. 그는 6자회담에 대해선 “언제라도 재개될 수 있다”면서도 “회담 재개의 조건에 대해 아직 아무런 합의가 없는 만큼 결과는 예상보다 나쁠 수 있다”고 낙관론을 경계했다.

프리처드 소장은 “6자회담은 북한에 대한 근본적 방침 변화 없이는 별 성과가 없을 것”이라며 “미국은 국제사회와 공조를 취하고 있고,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주한 미 부대사와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6자회담 관련국 모두가 서로에 대한 믿음(confidence)을 잃은 상태며 고위층 간에도 서로 신뢰가 없다”며 “누가 대북특사로 방북하든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변호사는 “미국은 북한의 정권 교체를 시도하되 전쟁 말고 다른 수단으로 붕괴시키자는 생각”이라며 “중국에 주도권을 뺏기는 것을 막고 한국의 인심도 잃지 않기 위해 6자회담을 계속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FTA협상… 개성공단 문제와 연계 곤란

현재 서울에서 6차 협상이 진행 중인 한미 FTA 협상에 대해 헤리티지재단의 베이커 스프링 선임연구원과 앤서니 김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전망하듯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2007년 새로 임기가 시작되는 의회에서 상원의 재정위원회 맥스 바쿠스 위원장과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찰스 랭걸 의원이 민주당 출신이지만 두 사람 모두 한미 FTA에 우호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에서 반FTA 시위가 격화되는 등 상황이 악화되면 협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리처드 소장 등 KEI 연구원들은 “일반적으로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자유무역에 더 까다롭다고 보면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개성공단 문제를 FTA 협상과 연계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bad idea)”이라고 충고했다.

●대북정책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대사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국의 대북정책에 크게 실망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지난해) 11월 말 미국을 방문했을 때 포용정책의 지속과 동시에 북핵 불용의 원칙을 강조했지만 한국도 이 문제를 두고 크게 분열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허버드 전 대사는 “개성공단이 장기적으로 북한 사회로의 침투 효과(자본주의 학습)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핵실험 이후 그 같은 주장은 미국에서 이해를 얻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부시 소장도 “북한 핵실험 이후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너무 약하다’고 보는 것이 워싱턴의 일반적 평가며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현금이 북한 사회를 뒤흔드는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나는 개성공단의 북한 경제에 대한 전환(transformation) 효과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롬버그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에 대해 아예 “이기적(selfish)”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쌀과 비료 지원을 중단한 것에 대해서도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의 일부 고위층은 아직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존재에 대해 미심쩍어하고 있으며 이런 태도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미첼 선임연구원도 “핵실험 이후 변해 온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 관련 언급은 워싱턴의 관점에서는 매우 당혹스러운(baffling) 것”이라고 평했다.

미 의회조사국의 래리 닉시 박사는 “미 의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한국 정부의 대응에 매우 실망했으며 한마디로 ‘기쁘지 않아(not happy)’한다”고 전했다.

●전작권 이양

이라크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자이툰부대의 파병 연장 문제에 관한 조언도 있다.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의 돈 오버도퍼 교수는 자이툰부대의 철군이 한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미 의회도 이라크에서의 철수가 대세이기 때문에 한미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는 “한미 고위층 간에 분명한 의사소통이 있어야 하고 철수 자체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38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미 양국이 2009년 10월에서 2012년 3월 사이에 이양하기로 합의한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에 대해 부시 소장은 정치가가 아닌 군 지도부가 정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의 경우 한국으로서는 전환을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전환의 인위적 시한을 결정하기보다는 한미 관계의 전반적인 상황에 따라 양국의 군사지휘부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롬버그 선임연구위원도 전시작전권 이양이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버드 전 대사 등은 로버트 게이츠 신임 국방장관의 취임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 등 한미 관계를 다뤄온 인물들의 영향력이 여전할 것이라며 “전시작전권 문제의 재협상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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