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금 국가해체 진행중”

  • 입력 2006년 11월 2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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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북한이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란 전망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옛 소련과 동유럽권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김일성 주석의 사망(1994년)과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대규모 아사(餓死) 발생, 주체사상의 설계자로 알려진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1997년) 등 일련의 과정은 누가 봐도 붕괴의 전조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북한 조기붕괴론은 빗나갔다. 북한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경험이 전혀 없고 △정보의 유통이 차단된 가부장적 독재국가라는 특성을 간과했으며 △북한을 패권국 미국에 대한 ‘전략적 완충지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중국의 전략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탓이다. 이 같은 과거의 판단 잘못 때문에 지금은 섣불리 북한 붕괴론을 말하는 전문가가 드물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북한이 당장 붕괴하지는 않더라도 점진적인 해체 과정을 거쳐 결국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현재 북한 위기가 더 심각’=현재 북한의 국가 위기는 김영삼 정부 당시 북한 붕괴론이 나올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견해. 통일연구원 서재진 선임연구위원은 “당시에 비해 경제난이 심각하고 그 때문에 사회주의 질서의 이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불만 등이 커졌다”며 “김일성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라고 말했다.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압박과 대외 고립도 북한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김 위원장 제거를 통해 비핵화 친중(親中)정권을 수립한다는 전제로 중국과 미국이 ‘빅딜’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부 때부터 김정일 체제가 내구성을 가지고 있어 붕괴 가능성이 없다는 ‘장기존속’을 전제로 취해 온 대북포용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북한은 국가해체 4단계 진행 중”=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는 최근 ‘북한 정세를 읽는 새로운 눈, 국가해체론’이라는 논문에서 “북한체제가 김일성 사후 체제 약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포용정책의 기본전제인 북한 장기존속이라는 정세 판단은 그릇된 것”이라며 ‘국가해체론’을 제시했다.

그는 북한 국가해체의 단계를 △1단계 경제 파탄 장기화 △2단계 사회질서 이완 △3단계 정권에 대한 불만 고조 △4단계 포스트 김정일을 둘러싼 권력투쟁 격화 △5단계 체제 붕괴로 나눠볼 수 있다며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부터 꾸준히 국가해체 단계를 밟아 와 4단계가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4단계에서 김 위원장을 이을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심화될 경우 경제파탄, 정권에 대한 불만 고조가 맞물려 김정일 정권이 몰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에 앞서 국제문제 전문가 로버트 캐플런 씨는 월간 애틀랜틱 10월호에 기고한 ‘북한이 무너지면’이라는 글에서 북한의 내부 붕괴가 △1단계 자원 고갈 △2단계 인프라 유지 불가 △3단계 지방 당 관료나 군벌이 통제하는 독립적 ‘봉건영지’의 등장 △4단계 김정일 정권의 진압 시도 △5단계 중앙정부에 대한 저항 △6단계 정권의 파열 △7단계 새로운 지도부 구성을 거칠 것으로 보았다.

그는 현재 북한이 1990년대 중반 4단계까지 갔다가 3단계로 돌아왔다고 진단했다.

▽북한 붕괴 가능성=그럼에도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북한 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구조상 민중봉기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불가능하고, 권력상층부가 김 위원장과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지도층의 균열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고려대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는 “김 위원장의 존재가 유지된다면 북한 체제의 해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전하는 실상은 다르다. 국가해체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1만 명 정도지만 북한을 떠난 주민은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북-중 접경지대에서는 국경을 지키는 북한 군인에게 중국 돈 200위안(약 2만3700원)을 주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눈감아 줄 정도로 통제력이 상실됐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북한 내에서도 “이제는 더 못살겠다. 어떤 식으로든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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