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블릭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위협 지역”

  • 입력 2006년 11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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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블릭스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10일 동아일보, 고려대, 재단법인 인촌기념회가 공동 주최한 21회 인촌기념강좌에서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이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전영한 기자
한스 블릭스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10일 동아일보, 고려대, 재단법인 인촌기념회가 공동 주최한 21회 인촌기념강좌에서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이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전영한 기자
10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스 블릭스 국제원자력기구 전 사무총장의 강연을 듣는 참가자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이날 강연에는 핵보유국인 인도 파키스탄 이란을 비롯한 주한 각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전영한 기자
10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스 블릭스 국제원자력기구 전 사무총장의 강연을 듣는 참가자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이날 강연에는 핵보유국인 인도 파키스탄 이란을 비롯한 주한 각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전영한 기자
《‘북한 체제 보장’과 ‘북-미 관계 정상화.’ 한스 블릭스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10일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2대 조건을 이같이 제시했다. 세계적 핵 전문가인 블릭스 전 총장은 이날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21회 인촌기념강좌에서 “체제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최대 고민이 있다”면서 “이런 ‘망상’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미국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간선거 이후 재편된 미국의 정치구도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정부가 지원하는 독립연구단체 ‘대량살상무기위원회(WMDC)’ 위원장을 맡고 있는 블릭스 전 총장은 올해 6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세계 핵개발 현황을 분석한 ‘테러무기’라는 제목의 227쪽짜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최근 그는 세계 각국을 돌며 지도자들에게 보고서 내용을 전달하고 핵확산 방지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고려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블릭스 전 총장은 곧장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날아가 중국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북핵 위기를 포함한 핵문제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그는 “보고서 저술을 위해 많은 국제 외교 군사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눴다”면서 “현재 핵 위협이 가장 심각한 지역은 북한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미국이 이란에 비타협적으로 대하는 것에 비해 북한에는 너무 많은 ‘당근’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이란보다 북한 핵문제가 훨씬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북-미 관계 개선 시급=동아일보, 고려대, 재단법인 인촌기념회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강연은 1시간 넘게 진행됐다. 블릭스 전 총장은 북-미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지난달 북한 핵실험은 새로운 것도, 놀랄 만한 것도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보유했다는 의심을 받아 왔으며, 다만 이번 핵실험을 통해 핵개발 능력이 명백하게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

그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에 연연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왜(why)’라는 질문을 던져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한때 중국과 러시아라는 맹방을 두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들에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극도의 체제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 같은 상황에서 그동안 미국이 보여 준 태도는 북한의 고립감을 심화시켰다는 것. 그는 “북한의 핵 활동 중단의 대가로 대북(對北) 경제지원을 약속한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가 옳은 방향이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 공격 의도가 없다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북 강경론이 계속 득세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명확한 안보 보장과 외교관계 정상화 의지가 있을 때만 북한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6자회담 난항 전망=블릭스 전 총장은 “북핵 문제 해결은 모든 핵 활동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면서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결정했지만 이것이 핵개발 계획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좀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며 “6자회담은 길고,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이 핵 활동을 포기하고 포괄적인 사찰을 수용토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며 이를 위해 북한에 상당한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 방안까지 논의되기를 바란다”면서 “북한이나 이라크와 같은 폐쇄된 사회에서는 사찰이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유엔의 적극적인 역할 기대=블릭스 전 총장은 북한 핵실험을 포함한 전 세계 핵 확산 문제를 풀기 위해 유엔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 세계가 핵의 공포를 직접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50년 동안 세계는 핵 축소가 아닌 핵 확산의 길을 걸어왔다”면서 “현재 세계적으로 2만7000기의 핵무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핵이 누구의 손에 있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며 핵 확산 방지, 군축, 테러리스트들의 대량살상무기(WMD) 사용 등의 문제를 협의할 정상회담을 유엔 주재로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블릭스 전 총장은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에 독립된 WMD 연구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유엔 안보리 제재가 적절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핵실험 국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며 “북한 핵실험 후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핵실험 여부와 강도에 대해 전문적이고 권위적인 분석을 제시할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한스 블릭스 박사는

△1928년 스웨덴 웁살라 출생

△웁살라대 졸업

△영국 케임브리지대 및 스웨덴 스톡홀름대 법학박사

△1963년 스웨덴 외교부 국제법 자문관

△1976년 스웨덴 국무부 차관

△1978년 스웨덴 외교부 장관

△198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3회 연임)

△2000년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UNMOVIC) 단장

△2003년 미국과의 불화로 UNMOVIC 단장 사퇴

△2004년 스웨덴 정부가 지원하는 대량살상무기위원회 위원장

△가족관계: 부인 에바 케티스 여사와의 사이에 2남

△저서: ‘이라크 무장해제’(2004)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핵 확산 방지 노력’(2001) ‘국제감시가 핵 확산을 방지할 수 있을까’(1983) 등 다수

주한 외교관 등 1000여 명 강연 경청

○…10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한스 블릭스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인촌기념강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대학생과 교수들이 다수를 차지한 가운데 일반인도 많이 눈에 띄었으며, 북핵 문제의 외교적 파장을 반영하듯 외국 대사관 관계자들도 대거 참석했다. 스웨덴, 독일 대사를 비롯해 핵보유국으로 평가받는 인도, 파키스탄, 이란 대사관 관계자들도 앞자리를 차지했다. 이날 행사에는 1000여 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주한 이란대사관의 하미드 라피자데 이등참사관은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핵문제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보여 줬다”고 블릭스 전 총장의 강연을 평가했다.

○… ‘군비 축소와 핵확산 방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은 내용이 다소 어려워 대학생들의 참석률이 낮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학생들도 북핵 문제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고려대 영문과 4학년 이재관(25) 씨는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전쟁 불사 등 과격한 반응도 있는데 블릭스 전 총장이 제시한 전 세계의 공동협력 방안을 듣고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난 후 ‘캐리커처 전달식’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블릭스 전 총장이 9일자 동아일보 A30면 ‘스포트라이트’ 난에 실린 자신의 캐리커처를 보고 마음에 든다고 말해 동아일보가 특별 선물을 제작한 것.

그는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이 자신을 꼭 빼닮은 캐리커처가 새겨진 기념 액자를 전달하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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