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 안들테니 北 편들지나 말라?… 美 대표단 동북아 순방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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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국무부 차관 2명을 동북아시아에 파견해 6자회담 전략 및 대북제재 이행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조율에 나선다.

국무부는 2일 니컬러스 번스 정무담당, 로버트 조지프 군축·비확산담당 차관을 포함한 대표단이 동북아시아를 순방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일단 일본(5, 6일) 중국(7, 8일)까지는 행동을 같이한 뒤 번스 차관은 한국(8일 오후∼10일)을, 조지프 차관은 러시아를 방문한다. 대표단에는 대북 금융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재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실무자들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부 내 6명의 차관급 가운데 정치군사 분야의 핵심인 두 차관이 함께 동북아를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국무부 내에서 번스 차관은 협상과 중재를, 조지프 차관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를 맡고 있다.

대표단 파견에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2일 미 TV에 출연해 “우리에게는 (북한에 적용할) 당근과 채찍이 모두 있다”고 말해 두 사람의 순방 임무를 가늠케 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채찍’ 역할을 맡은 조지프 차관이 베이징(北京)에서 서울을 ‘건너 뛰어’ 모스크바로 간다는 점. 미 국무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는 “조지프 차관은 이번 순방길에 대(對)이란 투자가 많은 러시아를 직접 찾아 이란 핵 문제를 협의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지프 차관이 중국 일본에 비해 대북제재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을 ‘소외’시키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조지프 차관의 한국 건너뛰기 일정보다 번스 차관의 서류가방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미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에 영변의 5MW급 원자로 가동 중단,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의 해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북한 재입국을 요구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번스 차관은 한중 양국 정부에 미국의 이 같은 원칙을 거듭 강조한 뒤 “미국에 동조하거나, 최소한 북한에 역성을 드는 일은 말아 달라”고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분석도 있다.

워싱턴의 또 다른 소식통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 직후 행정부 실무팀의 동아시아 파견 계획을 밝히면서 공개적으로 ‘성과를 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각별한 ‘결과물 도출’ 주문이 있었던 만큼 두 차관이 한국과 중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고강도의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 조지프 차관이 한국에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 관계자는 “조지프 차관이 지난달 라이스 장관과 함께 방한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문제를 충분히 협의한 데다 PSI가 국내에서 첨예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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