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김정일 쌈짓돈’ BDA 2400만달러

  • 입력 2006년 11월 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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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방식의 거래를 하면 당신은 얻을 것이 없지만 당신 국가는 100만 달러의 이득을 봅니다. B 방식을 택하면 국가는 100만 달러를 손해 보지만 당신 주머니에는 누구도 모르게 10만 달러가 들어갑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실 겁니까.”

만약 북한 관료들에게 이런 조건을 제시한다면? 유감스럽게도 기자가 아는 북한 관료들은 거의 대다수가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북한만큼 위아래가 뇌물과 부패로 얼룩진 나라도 드물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당연하게 여긴다.

북한에 진출한 많은 기업인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뇌물 공화국’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사회주의 국가라는 겉포장에 환상을 가진 탓이다. 상대하는 북한 관료에게 적당히 뇌물을 찔러 주었으면 훨씬 오래 버텼을 것을….

북한 관료 조직의 정점에 서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받아 내는 데는 고수(高手)다. 남북 정상회담의 대가로 5억 달러를 받아 낸 솜씨는 논하지 않더라도, 내부적으로 알아서 갖다 바치는 시스템이 잘 짜여 있으며 부패 고리의 뿌리도 아주 깊다. 실례로 외국에 파견된 대사들의 충성도를 평가하는 가장 큰 잣대는 ‘장군님께 바친 충성 자금’ 액수다. 북한 외교관들이 위조 달러와 마약을 소지하고 다니다 추방되는 일이 빈번한 데엔 다 이런 속사정이 있다.

미국이 지난해 9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몰래 예치해 온 북한 돈 2400만 달러를 갑자기 동결하자 북한은 격노했다. 바로 6자회담을 거부하고 미사일 시험 발사, 핵 실험으로 정세를 계속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그러면서 일관되게 “금융제재만 풀면 6자회담에 나가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고작 2400만 달러 때문에 북한이 이처럼 ‘과민 반응’을 보이자 처음에는 미국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핵문제만 풀면 몇십 배에 이르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줄을 이을 텐데 왜 저렇게 적은 돈에 집착할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그 돈이 김 위원장의 ‘쌈짓돈’임을 간과한 것이다. 그 김 위원장이 인민들이 굶어 죽을 때 수억 달러를 들여 아버지의 영생궁전을 건설한 인물임도 깜빡 잊은 것 같다.

‘나의 주머니가 인민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고방식부터 간파하는 게 북한을 다루는 지름길일 수 있다.

주성하 국제부(김일성대 졸업·2001년 탈북)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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