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北 “우라늄 개발”인정에 부시 “진짜냐” 경악

  • 입력 2006년 10월 2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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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 씨
후나바시 요이치 씨
《북한 핵 위기를 부른 것은 무엇일까.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는 20일 발간된 논픽션 저서 ‘더 페닌슐라 퀘스천-한반도 제2차 핵 위기’에서 이는 2002년부터 시작된 제2차 핵 위기에 관계 각국이 대처하는 데 실패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4년에 걸쳐 남북한과 미-일-중-러의 정치인 외교관 군인 등 관계자로부터 직접 증언을 들었다. 이를 토대로 북한 핵 위기의 배경을 750여 쪽에 이르는 저서에 풀어냈다. 그가 그간 인터뷰한 각국의 요인은 160여 명에 이른다. 》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을 조지 W 부시 미국 정권이 눈치 챈 것은 2002년 봄. 북한이 파키스탄에 ‘버찌 20상자’를 주문하는 전파통신 정보를 통해서였다. ‘버찌 상자’가 원심분리기라고 판단한 것.

2002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일행이 핵개발 의혹을 묻자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말했다. “우리는 HEU 계획을 진행할 권리를 갖고 있고 그보다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

켈리 차관보는 귀를 의심하며 옆의 일행에게 물었다. “들었지? 지금 얘기, 분명히 말했지?” 당시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목하고 북한에 선제공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한 험악한 때였다.

켈리 차관보의 보고를 받은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의 최초 반응은 “정말로 그렇게 말했나?”였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정말 갖고 있다고 했느냐?”고 흥분했다. 부시 대통령 역시 “뭐, 뭐라고? 인정한 거야?”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북한이 핵개발을 부정할 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갑자기 이제 뭘 해야 하느냐며 모두 막막해했다.”(미 정부 고위 관리)

이 책에 따르면 북한을 보는 부시 정권의 태도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다. 머리로는 북한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국제적 다각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 체제는 본래 붕괴시켜야 하며 이 같은 체제와는 교섭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파월 장관의 보좌관이던 윌커슨 씨는 “부시 대통령 속에 잠재한 텍사스 카우보이, 독재자와는 거래하지 않는다는 도덕적 결벽증,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비슷한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반(反)클린턴 감정”이 부시 대통령의 판단을 왜곡시켰다고 말했다.

또 노무현 정권 초기 한국 정부의 제안으로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군사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친서를 보내는 ‘작전’이 추진됐으나 불발에 그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2005년 9월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자금 2400만 달러가 동결되자 11월 열린 6자회담에서 김계관 북한 대표는 ‘금융은 혈액이며 금융 제재는 심장이 멈추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일본 정부대표단 한 명은 뒷날 “몸 깊은 곳에서 짜내는 비명처럼 들렸다. 북한이 처음으로 정말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라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4월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김정일이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싶다면 생각해 볼 수 있다. 기회가 있다면 이를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위원장은 4월 27∼28일 방북한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이 이 메시지를 전달하자 “평화조약은 우리가 본래 제안했던 것”이라며 “미국은 그런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직접 보내려 하지 않고 중국을 경유해 보내 왔다. 어떤 의도인가” “미국은 우리의 핵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등을 말했다. 그러나 평화조약에 대한 답변은 ‘예스’도 ‘노’도 아니었다.

대화의 실마리를 잃어버린 채, 5월에는 북한이 장거리탄도미사일 ‘대포동2호’ 발사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후나바시 씨는 제2차 한반도 핵 위기는 ‘이상한 위기’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북한의 ‘벼랑 끝 외교’ 전략에 말려든다고 경계했고 한국은 평화번영정책이 실패했다고 비판받을까 두려워했으며 중국은 북한에 더 큰 압력을 가할 것을 요구받아 북한이 더 불안정해질 것을 우려했다는 것. 그러나 그럴수록 북한은 위기를 연출했다.

결국 한반도 제2차 핵 위기는 북한의 체제 아이덴티티 위기, 세계의 핵 상황 위기, ‘차가운 발칸’이 돼 가는 동북아 상호불신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게 후나바시 씨의 결론이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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