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잇단 강경기조에 여권 기류변화 조짐

  • 입력 2006년 10월 19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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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통과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가 남북경협과는 무관하다는 자체 ‘유권해석’을 내리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해 왔던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미국의 강경 기조로 인해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18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금강산과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 “더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성의를 보이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북한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도 전날에 이어 금강산 관광 대가로 건네지는 달러의 전용 가능성을 제기했다.

19일 방한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역시 한국의 대북정책을 압박하고 있다.

▽움찔한 정부=청와대가 먼저 반응했다.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21세기 동북아미래포럼에 참석해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운용방식을 조정,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한미 간 이견이 없다”고 말하고 한미 간 정책 조율 기능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포용정책이 수정되고 있다는 말도 했다.

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식량과 시멘트 지원 중단, 개성공단 확장 중단 등 여러 교류가 사실상 동결되거나 중단되고 있다. 그 자체가 수정 조정되고 있는 국면”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을 위해 성의 있게 임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다만 송 실장은 포용정책 기조가 국제사회와 ‘엇박자’로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엇박자 내자는 말은 아니지만 엇박자 내지 말라 하면서 유엔에 우리 운명을 맡기면 자기 운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해 심사가 편치만은 않음을 내비쳤다. 이규형 외교통상부 제2차관도 이날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여러 의견을 감안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운영에서 새로운 사항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안보리 결의에도 불구하고 남북경협을 지속할 것이라던 기존의 방침에서 후퇴한 자세를 취했다.

▽난감한 여당=여당인 열린우리당도 미국이 연이어 강경 의견을 밝힌 데 이어 청와대가 직접 나서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 방식을 조정하겠다고 말하자 난감한 표정이다.

여당은 유엔 안보리 결의문이 나오기 전부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미리 선을 그었으나 현실이 다르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한의 2차 핵실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북한이 또 한 번 핵실험을 하면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위기감마저 묻어난다.

이날 우상호 대변인이 북한에 대해 “2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남측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그런 고충을 반영한다.

당내에서는 그동안 지도부가 남북경협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만 강조하다 스스로 입지를 좁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채수찬 의원은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당 지도부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내에서 의견을 모은 적도 없고 당론이라고 볼 수도 없다”며 “정부가 금강산 사업 계속해야 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140여 명의 국회의원이 같은 생각만 하기는 어렵다”고 말해 북한 핵실험 사태에 대한 지도부 대처에 당내 이견이 있음을 인정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美도 미군유해 발굴 北에 2500만달러 줬으면서…”

정부 고위당국자 ‘엉뚱한 태클’

미국이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정부 고위 당국자가 미국의 대북 현금지원 사실을 공개하며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한 지역에서 미군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북한 군부에 직접 건네 준 현금이 2500만 달러가 넘는다”며 “(북한의) 숨통을 틔워 놓아야지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의 발언은 17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금강산 관광은 북한 정부 관계자에게 돈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발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상황에서 정부 고위 당국자가 미국이 과거 중단한 사업을 거론하며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사업을 옹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미국의 유해 발굴은 북핵을 둘러싼 북-미 간 갈등으로 중단된 것으로, ‘미국도 현금 지원이 있었던 만큼 남북경협사업을 지속해야 한다’는 논리로 유해 발굴과 금강산 관광을 대비시키는 것은 전혀 맥락이 맞지 않는 엉뚱한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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