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커박사 “플루토늄 아끼려고 동시다발 실험 안한듯”

  • 입력 2006년 10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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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프리드 헤커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명예소장(왼쪽)이 10일 미국 스탠퍼드대 회의실에서 이 학교 신기욱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과 북한 핵실험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시그프리드 헤커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명예소장(왼쪽)이 10일 미국 스탠퍼드대 회의실에서 이 학교 신기욱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과 북한 핵실험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국내외에서 각종 대책과 분석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정치·안보적 파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실험이 기술적, 과학적 관점에서 어떤 수준이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긴요하다.

동아일보는 미국 최고의 핵전문가로 인정받는 시그프리트 해커 박사(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 명예소장)와 특별 인터뷰를 했다.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신기욱 소장이 본보를 대신해 10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 스탠퍼드대 회의실에서 해커 박사와 만나 북한 핵실험의 본질과 기술적 함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b>소형화 성공했다면 매우 놀라워
다음엔 어떻게 할지 깨달았을것
이르면 며칠내 추가시험할수도

▽신기욱 교수= 북한은 핵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실험이 실제로 성공적이었는지,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해커 박사= 한국 정부는 이번 실험의 지진파가 0.5 Kt급의 폭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호주와 프랑스는 폭발이 1Kt급 수준이라고 했다. 세 나라의 측정을 종합하면 500~ 1000t 급의 폭발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핵실험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약한 폭발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은 22Kt 이었다. 그러므로 북한이 폭발시킨 핵무기는 매우 소형인 것으로 보인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은 6㎏이 조금 넘는 플루토늄을 사용했으나 직경이 1.8m에 무게가 1만 파운드에 달하는 외형상 크기가 매우 큰 폭탄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1998년 핵실험 때 터뜨린 폭탄 가운데 몇 개는 나가사키급에 달하는 규모였다. 그러나 두 나라도 당시 1Kt급 미만의 폭발을 일으킨 핵폭탄도 3개 터뜨렸다. 5대 핵강국은 첫 핵실험때 모두 대규모의 폭발을 했었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선 과학자들이 진파를 분석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또 진파가 어떻게 핵출력(핵폭발력·파괴력)으로 전환됐는지를 분석하기 위해서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신 교수=만약 북한이 이번 실험에서 터뜨린 1Kt 급 규모의 핵폭탄을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폭발시킨다면 그 파괴력은 어느 정도인가.

▽해커 박사=1Kt급의 핵무기는 매우 낮은 핵출력을 가진 폭탄이지만 대도시 지역에서의 파괴력은 여전히 가공할 만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수준이다. 수천명이 즉사하고 방사능 때문에 수많은 사상자가 계속 발생할 것이다. 도시 전체를 휩쓸어버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거대하고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신 교수= 상대적으로 낮은 핵출력을 고려하면 북한이 실험한 것이 핵폭탄이 아닐 가능성도 있는가.

▽해커 박사= 북한이 상대적으로 단순하지만, 파괴력은 대형으로 계획된 핵폭탄을 실험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종류의 핵무기 실험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뇌관이 정확한 시간에 터지지 않았거나 폭약의 품질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핵출력이 낮아졌을 수 있다. 둘째, 기폭장치의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정확하지 못하면 핵출력이 낮아질 수도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북한이 규모는 작지만 정교한 핵폭탄, 즉 수많은 폭발 계측기가 달린 폭탄을 실험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그들은 이번 실험을 통해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이 그렇게 소규모의 정교한 핵폭탄을 디자인했다면 매우 놀라운 일일 것이다.

나는 북한의 핵실험이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지만, 만약 북한이 터뜨린 게 단순한 형태의 핵폭탄이었다면 실험이 기대했던 만큼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더 복잡한 장치였다면 북한은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북한의 과학자들에게 다음 실험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많이 가르쳐줬을 것이다.

▽신 교수= 미사일에 탑재할 만큼 작은 핵탄두를 만드는데 핵실험이 유용한가.

▽해커 박사=만약 북한이 소형 핵탄두를 만들 의도라면 이번 같은 실험이 주요한 단계가 될 것이다. 소형 핵탄두를 만든다는 것은 더 복잡하고 정교한 핵폭탄을 제조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냉전시대에 이것이 미국과 소련의 주요한 목표였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번 실험이 소형화라는 목표 달성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북한은 많은 것을 학습했을 것이다. 핵무기 소형화는 매우 중요한 단계(very big step)인데 핵실험 없이는 다다를 수 없다. 이것이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매우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신 교수=이번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가정할 때 북한이 소형 핵탄두를 제조하는데는 얼마나 걸릴까.

▽해커 박사= 핵탄두 소형화는 여전히 큰 과제(big step)일 것이다. 미사일 기술에서 북한이 아직도 문제가 있음을 감안할 때, 북한의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지 않고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신 교수= 북한의 핵실험이 성공인지, 실패였는지에 대한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해커 박사= 우리는 북한이 목적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만약 북한이 이번 실험을 (핵기술의) 대외과시용으로 삼고 싶었다면 별로 성공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만약 그들이 잘 계측되고 모니터되는 진전된 기술을 테스트해보고자 했다면 이번 실험에서 많은 것을 학습했을 것이다.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핵출력 분석을 기다려야 하며 북한의 핵실험 목적을 파악하는게 중요하다.

b>핵폭탄 6~8개 만들 능력은 충분
더 강한 핵 보유 과시하려 할듯
테러집단에 기술이전이 더 위험

▽신 교수=인도와 파키스탄은 1998년 핵실험 때 여러 개를 터뜨렸다. 북한은 이번에 한개만 폭발시킨 것이 맞나.

▽해커 박사=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북한은 한 개만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경우 두개의 폭탄을 동시에 폭발시켰었다.

▽신 교수=기술적 관점에서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것으로 보는가?

▽해커 박사= 현재 시점에서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원한다고 볼 수 있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 만약 이번에 실험한 게 단순한 핵폭탄이었다면 그들은 이번에 드러난 문제를 고치고 더 높은 핵출력을 가진 폭발을 과시하고 싶어할 것이다. 둘째, 만약 이번 것이 더 진전된 형태의 핵폭탄이었다면 그들은 이번에 학습한 것을 토대로 추가 실험을 통해 정교한 핵무기의 성능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싶어 할 것이다.

▽신 교수=북한의 핵 기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해커 박사= 2004년 1월에 영변의 원자로를, 지난해 8월엔 평양을 방문했다. 나는 북한이 6~8개의 핵폭탄을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갖고 있다고 본다. 핵폭탄 1개를 만드는 데 6~8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이 필요한데 북한은 대략 40~50kg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갖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재처리 능력이라면 매년 1개 정도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추가로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플루토늄 재처리에 관한한 인력과 기술, 설비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공학과 물리학 기술을 요구하는 일이다.

▽신 교수= 무기급 플루토늄 보유량이 제한돼 있음을 감안하면 북한은 가능한 아끼려고 할 것 같은데.

▽해커 박사= 그렇다. 그 점이 북한이 이번 실험에서 인도나 파키스탄과는 달리 여러 개를 한번에 터뜨리지 않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북한의 핵물질은 제한돼 있고 그들은 신중하게 사용하고 싶어한다. 북한은 추가 핵실험을 하기 전에 이번에 학습한 것을 충분히 평가하려 할 것이다.

▽신 교수= 기술적 관점에서 추가 핵실험까지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한가.

▽해커 박사= 만약 북한이 이번 실험 결과에 만족하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두 번째 실험은 며칠 내에 실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실험 결과가 그들의 예상 밖으로 나왔다면 핵 장치를 다시 만들어야할 것이고 이는 수주일에서 수개월이 걸릴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은 무기급 플루토늄이 풍부하지 않으므로 어떻게 사용할지를 신중히 판단할 것이라는 점이다.

▽신 교수= 이번 폭발 정도 수준의 핵무기라면 테러조직도 조립할 수 있는 수준인가.

▽해커 박사=나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근본적 위험은 북한의 플루토늄이 제 3자, 즉 테러리스트나 이란 같은 나라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본다. 1Kt 급의 핵무기라도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간다면 실로 가공할 결과를 빚을 수 있다. 나는 북한 핵프로그램의 근본적 위험은 북한의 플루토늄이 제 3자, 즉 테러리스트나 이란 같은 다른 나라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본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관련국들에 의해 억제될 수 있지만, 제3자는 억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핵실험 자체가 플루토늄의 시장 가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핵기술 수출에 있어서는 성공적인 핵실험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 교수= 핵연료봉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핵폭탄과 별개로 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통한 핵무기 제조에 대해 묻고 싶다. 북한은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해 왔지만 이제 "우리는 HEU 프로그램도 갖고 있다"고 말하고 나설 가능성은 없는가.

▽해커 박사= 나는 북한이 일정한 형태의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본다. 파키스탄의 칸 박사가 평양에 관련 기술과 장비를 제공했다는 파키스탄 대통령의 성명도 있었다. HEU 프로그램은 외부에 드러나는 것이 별로 없어서 플루토튬 프로그램과 비교할 때 외부에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칸 박사의 행적을 토대로 역산할 때 북한은 이미 상당한 분량의 농축우라늄을 확보했을 수 있다. 일단 농축우라늄을 생산하면 우라늄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훨씬 쉬우며 핵실험 없이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신 교수= 북한은 이번 핵실험으로 더욱 고립될 것이다. 고립이 북한의 핵프로그램에 차질을 빚게 할 것으로 보는가.

▽해커 박사= 내가 영변에서 본 것을 토대로 판단하면 현재 북한의 핵프로그램은 외부의 도움이나 공급에 의존하지 않는다. 고립된다 해서 핵프로그램 추진에 영향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우라늄 프로그램의 경우엔 북한이 외부세계로부터 추가로 기술을 들여오면 이득을 볼게 많으므로 기술적 고립이 아마도 진행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라늄 프로그램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중심은 아니다.

▽신 교수= 그동안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단순한 협상용으로만 여기는 시각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북한 핵을 연구해온 전문가로서 한국 정부나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게 있다면.

▽해커 박사=나는 항상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심각한 것으로 여겨왔다. 한국을 비롯한 관련국들도 북한 핵프로그램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핵기술의 유출 방지 등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

▽신 교수= 현재 국제사회는 한국정부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주시하고 있다. 유엔은 강경한 수단을 택할 것이다. 한국 정부도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어야할 때가 됐다. 지금까지 미국이나 한국의 정책은 모두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했다. 둘다 실패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서로 협력하지 않고는 어느쪽의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핵실험 이후의 대책에 있어 두 나라는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균열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

모두가 인정하는 미국 내 최고의 핵무기 전문가. 미국에서 처음 핵폭탄을 제조한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86년부터 1997년까지 소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소장이다. 금속공학 박사로 플루토늄과 핵 정책, 비확산, 핵감축 등을 주로 연구해 왔다. 미국 국립학술원 회원으로 ‘미국-러시아 반(反)테러 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스탠퍼드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북한은 2004년 1월 헤커 박사를 초청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을 추방한 지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영변 원자로를 보여주기도 했다. 권위 있는 전문가를 통해 북한의 핵 기술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다. 미 의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는 것을 제외하면 언론 노출을 꺼리는 헤커 박사가 이례적으로 동아일보의 특별 회견 요청에 응한 것은 북한 핵실험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그의 인식을 보여준다.

만난 사람=신기욱 교수

정리=이기홍 워싱턴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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