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회담, '북핵 불용' 원칙 재확인

  • 입력 2006년 10월 9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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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북한 핵실험의 거센 파고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을 덮쳤다.

노무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마주 한 이날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북한의 전격적인 핵실험에 대한 한일 양국 공조 방안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한일 관계 발전 방안은 북핵 이슈에 가려 빛이 바랜 느낌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청와대 본관에 도착한 아베 총리를 맞았으나 북한 핵실험 탓에 두 정상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북핵 공동 대처=양 정상은 이날 북한의 핵실험 정보에 대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향후 대응 방안을 집중 협의했다. 북한이 핵 실험 카드를 통해 미국과의 긴장 대결 국면을 조성해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논의가 오갔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서 한일 정상들은 북한 핵실험에 대해 '북핵 불용' 원칙을 재확인했다. 북한 핵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에 미칠 악영향이 심각하다는 점이 고려됐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양 정상은 유엔을 통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응하되 한일 양국 간 긴밀한 공조 체제가 가동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특히 북한의 핵 실험이 그동안의 '가능성' 수준에서 실제로 현실화한 만큼 양 정상은 대북 대응 기조의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에도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정상은 구체적인 대북제재 방안에 대해선 추후 실무 차원의 협의에 넘기기로 했다. 북한의 핵 실험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움직임 등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대북 해법을 둘러싸고 한일 간 공조체제가 제대로 가동되겠느냐는 회의론도 없지 않다. 7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북한 외무성이 3일 "핵실험을 하겠다"고 예고한 이후 한일 양국은 대북 대응 방안을 둘러싸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 북한 맹비난=정상회담에 앞서 아베 총리는 이날 낮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한명숙 국무총리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찬에서 "국제사회의 틀 속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요구에 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북한의 핵 실험을 맹비난했다.

그는 이어 "한일 연계를 통해 북핵 문제에 대응한다는 것을 세계에 제시해야한다"며 "이 문제는 냉정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야하며 미국 일본 한국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연계하고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북한의 핵 실험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온 국민의 열망과 국제사회의 희망을 저버린 것이며 지난해 9·19 공동성언의 취지에도 역행하는 용납할 수 없는 도발 행위"이라며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한일 양국의 협력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는 '미래진행형'=노 대통령은 이날 아베 총리와의 단독 정상회담 직후 열린 확대정상회담에서 "이번 회담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한일관계의 미래를 풀어가는, 대화의 실마리를 푸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도 한일 관계에 대해 "이제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발전시킬 시기가 왔다"며 "나도, 일본 국민도 한국 국민의 감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상호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를 단절시킨 계기가 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여부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다만 '한국 국민의 감정을 고려하겠다'는 메시지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제하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가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한 일본정부의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노 대통령과 한국 국민을 겨냥한 제스처로 보인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사회당)가 패전 50주년을 맞아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미 아베 총리는 2일 중의원 답변에서 태평양전쟁에 대한 역사 인식과 관련, '무라야마 담화'를 인용하는 형식으로 "우리나라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인들에 대해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말했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제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묵시적' 반응을 수용함으로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시절 단절된 한일 관계를 복원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일 정상의 '의도된' 침묵은 향후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에는 불완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아베 총리가 일본 내 사정을 의식해 또 다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결행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기 때문이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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