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누가 최후에 웃는가 보자”

  • 입력 2006년 10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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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핵실험 강행을 발표한 뒤 국제사회의 압박과 설득에 직면하고 있는 북한은 일단 추가 발표나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은 채 정중동(靜中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핵실험 보도’를 4일까지 반복한 뒤 5일 이후에는 핵실험과 관련된 추가 보도를 하지 않았다. 다만 8일 북한 웹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에 소개된 노동신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년 전인 1996년 1월 “억천만 번 죽더라도 모든 시련과 고난을 뚫고 사회주의를 지켜 나간다. 누가 최후에 웃는가 보자. 이런 신념, 이런 배짱을 가지고 싸우면 당해낼 자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동신문은 6일자에서도 “총대가 약하면 자주권을 포기하게 되고 제국주의자들 앞에 굴종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유엔의 대북 경고성명 채택 과정에서 안보리 이사국들과 외교적 접촉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 국방위원장의 당 총비서 추대 9돌을 맞은 8일에는 전 매체를 동원해 ‘김정일 찬양’에 주력하며 내부 체제 결속을 도모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외부적으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5일 평양발로 “핵시험 성명은 행동을 전제로 발표된 것이며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구현돼 있다”며 “지난해 2월 핵무기 보유를 선포한 조건에서 핵시험 실시는 사태 진전의 필연적 귀결이며 혹시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면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그야말로 조선을 잘못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기조는 7월 18∼22일 평양에서 열린 재외공관장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지금은 전 세계가 적인 만큼 자력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고립을 감내하겠다는 메시지를 밝힌 데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 직접 참석하진 않았지만 안보리 결의에 찬성한 중국과 러시아, 식량과 비료의 추가 지원을 동결한 한국을 거명하며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 위원장은 핵실험 시 백두산이 너무 흔들리게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고 영국 더 타임스가 6일 전했다. 백두산은 수많은 한국인이 신성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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