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경 “北실상 깨닫고 反자본주의 시각 바꿔”

  • 입력 2006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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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수재의 서울대 진학, 학생운동 투신과 구속, 다시 시작한 학업과 취업, 그리고 새삼 깨달은 북한의 얼어붙은 현실….

북한민주화운동가인 하태경(39) 열린북한방송 대표의 삶은 전향한 386세대 운동권 출신의 일반적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5년 SK텔레콤 팀장 자리를 내던진 그가 선택한 길은 꼬마 방송국을 설립한 뒤 ‘진짜 햇볕’을 전파에 실어 북녘 동포에게 전하는 일이었다.

정식 직원 4명인 열린북한방송은 최근 미국 국무부가 주는 대북방송지원예산 가운데 첫해분 100만 달러의 공동수혜자 세 곳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됐다. 열린북한방송은 서울시내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제작해 미국 워싱턴에서 송출하는 단파방송.

귀국 준비를 하고 있는 하 대표를 28일(현지 시간) 워싱턴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3월 미국 민주주의기부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에서 연수를 받기 위해 6개월 예정으로 워싱턴에 건너왔고, 이후 미 국무부의 예산을 따내기 위해 체류기간을 연장했었다.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개국한 열린북한방송(단파 9785kHz·www.nkradio.com)은 첫 방송 때부터 ‘부드럽게 간다’는 원칙을 정했다. 북한 핵, 기아,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정치성 강한 소재는 다루지 않는다. 27일치 방송을 직접 들어봤다.

이날 오전 6시부터 30분간 방송된 내용도 이산가족의 편지, 연재소설 ‘방랑 김삿갓’ 읽어주기, 웰빙 생활법, 톡톡 잉글리시 강좌였다.

하 대표는 최근 서울을 방문해 김수환 추기경을 직접 만났다. “정말 좋은 일 한다”는 격려도 받았지만, 추기경 자신의 회고록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북한 주민이 얼마나 이 방송을 들을까. 하 대표는 “미국 정부가 가장 집요하게 묻는 게 그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언론재단이 2005년 탈북자 3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꺼내들었다고 했다. 응답자의 4%가 “단파라디오로 한국방송을 들었다”고 답했고, 11%는 “중파 라디오로 KBS 사회교육방송을 들어봤다”고 답했다. 하 대표는 “내 스스로도 탈북자 100여 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북한 주민의 1%가 단파방송을, 7∼8%가 중파방송을 통해 한국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가 라디오 사업을 결심한 것은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는 과정에서였다. 특히 북한 주민의 전체적 교양수준이 떨어져 민도가 낮은 것이 향후 통일과정에 또 다른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시간을 넘긴 인터뷰 동안 그는 구조조정, 투자마인드, 프레젠테이션, 리더십이란 어휘를 썼다. “북한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주사파는 아니었지만 자본주의를 부정했었다”던 그를 무엇이 바꿔 놓았을까. “왜 돌아섰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세 가지 얘기를 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시절 그는 ‘운동의 물’이 덜 빠진 탓에 남미, 아프리카의 해외 좌파 사례를 연구했다. 그러다가 ‘박정희’를 만났다. 하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초기는 화폐개혁 등 좌파정책에 기울었다. 그러다가 제3세계 국가의 좌파 붐과 달리 우파정책으로 돌아섰다”며 “수치(data)가 입증하는 그의 성과를 모른 척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1989년, 1991년 두 차례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갔고, 번번이 두들겨 맞았다고 했다. 1991년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19개월을 감옥에서 지냈다.

“독재정권도 질이 다르다. 남미와 비교하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전체주의가 아닌 권위주위 정권이었다. 안기부에서 맞으면서도 남미에서처럼 죽어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 유학시절 그는 피해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이 가해자 마오쩌둥(毛澤東)을 ‘마오는 공적이 7이고 과실이 3’이라며 포용하는 것을 보고 ‘나라고 과거를 포용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아버지를 되찾았다. 집안의 기대를 받던 ‘가난한 수재 운동권’은 아버지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엔 우리 아버지 세대의 고생으로 내가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었다.”

SK텔레콤 시절엔 리더십의 개념에 새로 눈떴다고 했다. “제대로 된 리더십은 진짜 힘들다. 단순히 민주적이란 것으로만 될 일이 아니며, 때로는 독재로 비칠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절감했다”고 회고했다. ‘전대협의 하태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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