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천지개벽, 상전벽해 어디 갔나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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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의 북한 투자 실태가 본보 보도(15일자 A1·6면)를 통해 생생하게 밝혀졌다.

기업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우리 기업의 대북(對北)투자는 총체적 실패다. 남북 경협사업이 시작된 이후 북한에 투자했다가 망한 기업이 500여 개다. 5년 이상 사업한 기업인은 대부분 쪽박을 찼다고 한다. 북한 관리들이 끝없는 뇌물 요구와 ‘나 몰라라’의 무책임으로 일관한 탓이다. 그들의 행태는 사기꾼이나 조직폭력배와 다를 바 없었다.

본보에 증언한 기업인 몇 분에게 엊그제 안부 전화를 걸었다. 북한으로부터 무슨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기업인 A 씨의 말이다.

“이번 보도에 대해 북한 관리들이 곤혹스럽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중국 지인(知人)에게서 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제대로 못한 것은 인정하지만 남한 기업도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볼멘소리를 했다고 하더라. 북한 당국도 자체조사에 들어갔을 것이다.”

기업인 B 씨는 북한이 이번에 문제점을 점검하더라도 투자환경 개선은 어렵다고 비관했다. 구조적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1억 원 투자하면 3000만 원 정도 뜯긴다고 보면 된다. 북한 관리 10명 만나 보면 ‘제대로 된 인간’은 한두 명밖에 없다. 대부분은 봉 잡았다는 생각으로 남한 기업을 대한다.”

‘제대로 된 인간’에 속하는 북한 관리 C 씨는 B 씨에게 “이렇게 하면 우리가 손해라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위에서 달러 상납을 독촉하니 어쩔 수 없다”며 부패의 먹이사슬을 실토했다.

이처럼 남한기업은 뼈까지 발라먹으면서 중국계 투자기업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린다고 B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민족공조와 신의를 입에 달고 사니 위선(僞善)의 극치다.

대북투자사업을 즉각 중단하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생각해 잠시 참기로 했다.

답답한 마음에 세계적 경영컨설팅회사 한국지사 D 사장을 만났다. 북한 관리가 아니라 죄 없는 주민을 위해 북한을 위한 경영진단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과거 구(舊)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를 컨설팅한 적도 있지만 북한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해 한국과 중국에 구걸해서 연명(延命)하고 있지 않은가. 기업이라면 벌써 파산했다.”

D 사장의 말은 계속됐다.

“굳이 북한의 문제점을 경영 측면에서 분석해 보자면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없는 황제경영을 들 수 있다. 올해보다 내년이 좋아질 것이란 비전을 스스로 포기했다. 부패와 무능에 찌든 관리들을 보니 인재 육성에도 실패했다.”

국가나 기업이나 경영 실패의 최종 책임은 최고경영자(CEO)가 져야 한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CEO로서 경영혁신을 등한시한 결정적 책임이 있다. 그는 중국 산업시찰을 할 때마다 천지개벽(天地開闢), 상전벽해(桑田碧海) 운운했지만 실천은 하나도 안 했다. 미사일과 핵을 앞세워 돈이나 얻으러 다니지 않았나.

김 위원장이 본보 보도를 봤다면 화를 내기보다는 ‘쓴 약(藥)’으로 삼아 시스템경영, 비전경영, 윤리경영에 나서야 한다.

우선 부패관리부터 당장 처벌해서 떠나는 남한 기업을 붙잡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나마 남아 있는 남한기업마저 모두 떠나면 북한은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을 수밖에 없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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