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김영춘 의원 ‘좌파적 수구세력으로 전락할 것인가?’

  • 입력 2006년 8월 21일 12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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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적 수구세력으로 전락할 것인가?

1. 대한민국은 일본식 1.5당 체제로 가는가?

지방선거 참패 이후,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열린우리당과 진보개혁세력은 민심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지방선거 결과는 그 정처없는 표류에 대한 국민들의 냉엄한 심판이었고 7.26보선은 확인사살인 셈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의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나 진보개혁세력의 이름을 내건 어떤 정당도 집권당이나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할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교육위원 선거에서 전교조가 참패한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회 전반의 우경화 흐름은 열린우리당만의 위기가 아니라 온건, 급진을 통털어 대한민국 진보진영과 중도개혁세력 전체의 위기이다. 수십년 동안 국민들 속에서 반독재 민주화, 민중운동을 통해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이 나라의 집권 다수당 위치로까지 성장한 그 역사적 세력이 몰락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그만큼 진보세력, 개혁세력의 낡은 논리와 독선, 무능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경향이 고착된다면 내년 대선의 패배는 물론이고 앞으로 상당기간(적어도 10년동안)은 복고적 반동의 물결이 이 나라를 지배할 것이다. 이같은 위기감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식자들이 함께 걱정하고 있는 바이다. 어쩌면 일본정치처럼 보수 자민당 1당의 지배체제가 고착화되고 다른 정당들은 반영구적 소수정당으로 전락하는 1.5당체제가 형성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생겨나는 지경이다. 그러면 정작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는 무엇인가? 무엇이었기에 열린우리당을 이토록 확실하게 고사 직전의 위기로까지 몰아세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열린우리당이 걸어왔던 지난 3년의 발자취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생각은 없다. 우리당 창당의 기폭제는 노무현대통령이 치켜든 지역주의 해체와 정치, 정당개혁의 깃발이었고, 그 구성원들의 최대공약수는 과거 민주화운동의 대의와 사명감 그리고 아직도 미완인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복무의식이었다. 창당이후 열린우리당이 주력했던 정치는 바로 이러한 출발점에 충실한 행보였다. 해방 이후 60년간 채 정리되지 않았던 과거 역사에 대한 정리와 해원(解寃), 군사독재시대의 부정적 잔재 청산, 공정하고 투명한 정치-사회-경제 질서의 확립 등은 누가 하더라도 언젠가 해내야 할 과제들이었다.

노무현대통령의 집권과 탄핵 파동으로 인한 열린우리당의 국회 과반수의석 확보는 이같은 묵은 과제들을 정리해내야 한다는 열망과 압력을 분출시켰고 우리당 안팎의 구성원들과 지지자들도 예외없이 이 상황에 충실하게 달려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은 끊임없이 스스로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임을 되새기면서 고통받는 서민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과 복지예산의 확대에 노력해 왔다. 그렇다면 이처럼 역사적, 철학적 당위에 입각한 우리당의 노력이 왜 국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일까?

2. 열린우리당의 오류

정치는 혁명이 아니다. 특히 집권당에게는 무책임해도 면책되는 야당과 달리 끊임없이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걱정하고 국민적 통합을 우선하는 절제의 정치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 안팎에서 분출하는 열망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고 마치 혁명을 하는 것처럼 정치를 했으며, 적어도 그렇게 비쳤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들의 강박감 때문에 언제나 우리들이 나아가는 앞머리에 내걸려 있었던 과거 문제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반면 국민들은 과거문제의 정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문제 해결을 더 우선 순위에 놓고 생각했다. 이 차이가 점점 벌어져 현재의 외면상태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들의 단호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원했던 정치는 상대를 타도하는 식의 혁명적 방식이 아니었다. 과거와 보수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대결이 아니라 타협을 통한 점진적인 개선이 국민 다수가 원하는 정치였다. 한나라당의 오만함을 단호히 심판한 그들은 우리의 오만함에 대해서도 늘 경계하고 독선의 정치가 재현되면 언제나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난 시대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결과물로서 우리 사회는 진리의 독점을 용인하지 않는 수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치의 본래 사명은 국민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특히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주력하지 않는 정치는 혁명적 상황이 아닌 한 국민들의 배척을 받기 마련이다. 경제가 좋을 때라면 모르되 실물경기가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집권세력은 이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옳았다. 경제구조와 규칙을 바로 잡는 일은 전적으로 정당한 일이되, 고통받고 희망을 잃은 대중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앞서야 했다. 이 점에서 정부와 당은 무능했다. 한나라당으로부터는 분배의 정의에 치중하는 좌파라고 비난받으면서도 정작 서민들은 자신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존재로 우리를 인식하게 만든 것은 정치적 무능 그 자체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민 대중들의 삶은 더 고단해진 것이 사실이다.

반지역주의연합, 거수기 여당에 불과

세계화의 거센 물결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결과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주된 고통의 진원지가 되었다. 이 문제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면서 개방과 경쟁의 논리만을 외쳐대는 정치는 한나라당이라면 모르되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자기부정일 수밖에 없다. 지역적 지지기반을 스스로 부정한 상태에서 계층적 기반마저 무너져버린다면 전국정당, 백년정당의 꿈은 일장춘몽일 수밖에 없었다.

참여정부 3년 동안 하위 40% 서민들의 근로소득, 사업소득이 실질 감소하고 비정규직이 급증한 상황은 우리당이 발디디고 있는 정치적 토대가 얼마나 사상누각이었는가를 잘 말해준다. 복지 확대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있긴 했지만 정작 그 수혜자들조차 우리당과 참여정부의 공적으로 실감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민생 증진의 근본 처방이 아닌 ‘언발에 오줌누기’식 대책으로 받아들여졌을 따름이다.

또 하나의 오류는 과도한 정당실험이었다. 지역적, 물리적 토대를 스스로 부정한 상태에서 오직 이상만으로 치달은 ‘새로운 정당의 건설’은 그야말로 무모한 모험이었고 과도한 열정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전위정당이 아닌 대중정당의 지향 속에서 기간당원제는 결국 경선후보자들을 위한 동원당원, 종이당원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문제를 새로운 정당 건설의 요체로 파악했던 당내의 원칙주의자들은 구태 정당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올바른 지향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현실적 토대 구축의 단계를 무시함으로서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낳는 데 일조했다. 나 또한 초반 2년 동안은 똑같은 이상에 몰입해 있었으므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원내와 당의 분리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을 무시한 속도위반의 실험이었다. 당의 강령적 노선이 채 확립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당과 원내의 이중권력 체제는 가뜩이나 취약한 당의 단결을 해치고 일사불란한 행동과 그에 따른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는데 저해 요인이 되었다.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단계에서 뛰려고 한 꼴이라고나 할까? 조직적 뿌리가 박약한 상태에서, 그리고 단결의 구심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치러진 새로운 실험들은 많은 구성원들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지치게 만들고 회복 불능의 상호불신과! 극렬한 분파주의만 낳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오류는 양극화의 확대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세계화시대에 대한 명확한 자기 입장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세계화에 대응하는 유일한 선택으로 오해한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주도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어떤 의미있는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세계화가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파장에 대한 구체적 전망과 대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구분하고 주체적 세계화의 관점을 제대로 정립하면서 우리당만의 국가발전전략, 사회통합모델을 내놓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당은 명색이 원내 제1당이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조응하는 당의 강령을 확립하지도 못했고 그 강령적 기초 하에서 핵심적인 경제정책, 사회정책을 제대로 제시하고 실천하지도 못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정당을 지향했으면서도, 당과 원내를 분리하여 정책중심 정당을 표방했으면서도, 정책연구원을 별도로 만들어 많은 예산을 투입했으면서도, 청와대와 정부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과거의 여당 체질을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 전당대회를 치러도 강령과 정책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주가 아니라 인물과 지역 중심의 계파주의가 지배하는 과거 정당의 전철을 반복할 뿐이었다. 요컨대 지금까지의 열린우리당은 반지역주의연합에 불과했지 본질적으로 우리가 소망했던 새로운 체질의 정당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3. 노무현대통령의 오류

나는 대통령께 기회있을 때마다 고언을 드려왔다. 그 기본 입장은 정부와 여당을 일체로 하는 정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 성패의 관건을 쥐고 있는 대통령에게 성공하는 정권을 만들자는 충언이었다. 나는 초선 시절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이었다. 그러면서도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고군분투해 온 노무현대통령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 미안함이 정치적 자살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한나라당을 박차고 나와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게 만든 동인의 하나였다. 물론 한나라당에 대한 절망감과 제대로 된 개혁정당을 만들어보자는 충정도 작용했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영속적 정당의 개척에는 대통령과 당 사이의 올바른 관계 정립이 필수적이었다. 동일한 국정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면서도 상호 간에 건강한 협력과 견제가 공존하는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당정분리는 그런 차원에서 추진된 원리였다. 열린우리당에서 대통령은 단지 당원일 뿐이다. 취임 이후 대통령은 원론적 당정분리 입장을 견지해 왔고 이는 과거와 달리 당직 인사나 공천에 있어 대통령의 영향력을 거의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거 정당과는 명백히 다른 여당 운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당 전체를 통털어 가장 영향력있는 실력자이고 당도 그 점을 존중해 온 것이 당연한 현실이었다. 대통령이 당원이 아닌 정당은 더 이상 여당이 아니므로 그의 존재 자체가 정치적으로 핵폭탄과 같은 무게가 있는 것이다. 이런 위상으로 대통령은 중요한 고비마다 자신의 의제와 화두를 당에 강요하고 관철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관심사와 당의 관심사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바깥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과 당소속 의원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빈번히 제기되고 그러나 불편했던 화제가 대통령의 민생현장 시찰 문제였다. 의원들은 창당 직후부터 기회있을 때마다 어려운 민생 상황을 전달하고 대통령께 현장방문과 서민들에 대한 격려를 주문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런 문제제기 자체를 거북하게 여겼다. 특별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 정치적 쇼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싫다는 결벽증적인 거부반응이었다.

기본적으로 옳은 자세이긴 하나 이 하나의 사례에서도 그는 지도자로서 작지 않은 결함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학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과거 독재시대의 대통령도 아니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도 전지전능한 대통령이 아니다. 다만 국민들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주는 대통령, 지금은 당장 힘들어도 우리의 지도자를 믿고 따라가면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기대하는 것이다. 회의실에 앉아 보고를 받고 엄숙한 교시를 하는 대통령은 그런 믿음을 창출하기 어렵다. 적어도 국민들이 노무현대통령?! “? 기대했던 지도자상은 아니었다. 국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지도자를 통해 국민의 마음은 열리고 믿음은 현재화된다.

참여가 없는 참여정부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원성은 무슨 거창한 이유보다 이렇듯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장애에서 발생했다고 나는 믿는다. 국민은 살기가 힘든데, 미래의 희망이 안 보이는데 대통령과 정부는 거시경제지표를 들어 경제가 괜찮다고 했다. 경기부침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남발하는 정부도 나쁜 정부이지만 국민의 삶의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막고 경제학 교과서만 읊어대는 정부도 좋은 정부일 수 없다.

마차 바퀴는 바퀴살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바퀴를 국가 전체의 거시경제로, 바퀴살들을 미시적 삶의 현장들로 생각한다면 바퀴살들이 연약해지고 비틀어진 후 바퀴가 온전히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한 진리일 것이다. 급기야 바퀴살들은 부러지고 마차 전체가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출실적과 무역수지흑자가 호조를 보이고 대기업들의 수익채산성이 좋다고 해서 국민들 다수가 더불어 풍족해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성장률이 왠만하다고 해서 괜찮은 일자리가 정비례해서 늘어나지 않는 세계가 되었다. 오히려 나쁜 일자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다수 국민들의 삶의 질은 나빠졌다. 요컨대 대통령과 경제부처는 전체 지표와 세계적 흐름만 바라보지 그 안에서 시나브로 곪아가는 국민들의 삶에 대해서는 가슴으로 함께 아파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고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여당 의원들을 재선에나 연연하는 비속한 정치인들로 폄하하고, 바깥에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걱정과 비판은 전체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오만함으로는 올바른 당청관계도, 참여정부의 성공도 애초에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대통령의 충동적인 발언과 준비되지 않은 정치행보 역시 큰 문제였다. 대연정 제안만 하더라도 그의 충정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전혀 준비되지 않은 돌발적인 제안으로 정치권은 몇 달간 이 문제에 고착된 채 갑론을박만 무성했을 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거꾸로 우리당과는 심리적 갈등만 커졌고 한나라당으로부터는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조롱만이 돌아왔다. 지지자들의 실망과 이탈만 가속화시켰을 뿐이다. 그런 중차대한 제안을 하면서 우리당과도 한나라당과도 충분히 숙성시킨 사전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정만 몇 달 표류하고 열린우리당이 모처럼 작심하고 덤벼들었던 양극화 해소 이슈들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국가발전전략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노무현대통령이 우리당보다는 훨씬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인 것이 사실이다. 그는 작년부터 비교적 일관된 논리적 기조 하에 한국의 미래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통합과 개방’이다. 그의 대연정론은 지역으로, 이념으로 분열되어 온 과거 역사를 되풀이하면 나라의 운명이 어려워진다는 국민통합에 대한 고민의 결정체였다. 한미FTA 추진은 조선말엽의 쇄국론이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을 교훈삼아 세계화시대를 능동적으로 타개해 나가자는 개방발전론의 결정판이다.

대통령 고민의 출발점은 정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과정과 방법이다. 참여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지지자들, 나아가 이해당사자와 국민들에 대한 설명과 동의 과정도 제대로 조직하지 않고 돌발적으로 정책을 추진해가는! 독선적인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는 결과가 나쁘면 선의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위치는 더욱 그렇다. 갑작스럽게 추진된 한미FTA협상에 대한 세간의 반발 역시 이념 차원도 있겠지만 과정이 나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우려, 나아가서는 나쁜 결과까지도 숨기고 밀어붙이지 않겠는가 하는 불신으로 더 증폭된 측면이 크다.

4. 좌파적 수구세력으로 전락할 것인가

다시 열린우리당으로 돌아가서 가장 큰 잘못을 말하자면 그것은 청와대와 정부의 부족함을 바로 잡아주는 견제자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정당으로서 대통령과 관료들의 모자란 가슴을 채워 이끌어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당만 어려워진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노무현대통령마저 무능하고 한심한 대통령으로 만들어버렸다. 나아가 이 나라 개혁세력의 향후 전망 자체를 위기에 빠뜨려버렸다. 능동적 역할의 부재는 우리당 구성원들 가슴의 온기가 모자라서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지리멸렬해진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대통령과 당의 상호관계에 대해 진일보한 자세를 갖지 못했다. 대통령은 당정분리를 상호간섭 배제로 해석한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이 대통령의 인사와 정책, 그리고 정치적 결단을 뒷받침해준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이 전제가 무너지고 당이 대통령의 권한 영역에 대해 간섭하면 그것은 약속 위반이고 서로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올바른 당정분리인가? 분리의 기본정신은 과거식의 대통령 일방통행의 극복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상호간섭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운명체이고 책임을 함께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현 시기 국가와 세계와 경제를 통찰하는 철학과 비전의 부재이다. 당 전체를 관통하는 확고한 자기 중심과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과 정부의 명백한 오류에 대해서도 자신있게 공유된 반대를 하지 못하고 끌려왔던 것이다. 대통령은 임기 끝나고 나면 그뿐이지만 국민에 대한 항구적인 책임은 당이 질 수밖에 없으므로 어떤 면에서는 당이 더 필사적으로 정부정책에 간섭해야 한다. 특히 당의 기본 노선이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당은 경향적 정체성은 있을지 몰라도 당의 강령으로 확인되는 공유된 정체성, 공유된 노선이 부재하다. 당 강령은 그 구성원들이 당에 참여하면서 구속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공동의 약속이다. 창당 당시 만든 강령이 문제가 많다고 해서 올 2월의 전당대회에서 새로이 강령을 채택했지만 여전히 장식물에 불과하다. 구성원들 간에 구속적으로 실천되는 기본노선이 공유되지 않는 한 우리당의 운명은 명약관화하다. 과거의 정당들처럼 대통령의 임기 만료와 함께, 아니 그보다 일찍 내년 대선 국면에서 소멸하는 운명을 밟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세간의 비판에 대해 우스개삼아 ‘좌파신자유주의 정부’라는 말로 응대한 적이 있다. 열린우리당도 국민들로부터 똑같이 좌파 신자유주의당이라고 간주되고 있는 듯 하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짜 좌파들이 볼 때는 우리당은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우파로 간주될 만하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당의 다수 의원들은 도저히 신자유주의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느라 어쩔 수 없이 얻은 상흔인데, 이것이 정체성 혼란을 초래한 기본 배경이다. 반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극우파들이 볼 때 우리당은! 좌파이다. 그 사람들이 볼 때는 미국 공화당의 좌파들도 진짜 좌파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좌파라면 우리는 흔쾌히 좌파를 자처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히 한나라당보다는 진보적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작업은 사실 진보진영의 몫이 아니라 민족주의적 우파가 앞장서야 할 몫이지만 한나라당이 그 역할을 할 수 없는 정당이므로 우리가 그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같은 역사적 환경에서 민족문제에 좌, 우파가 따로 있겠는가? 우리가 한나라당보다 진보적인 것은 대북평화노선이 그러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있어서 특히 그러하다. 맹목적인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면에서도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국민들의 뇌리 속에 분명히 각인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능했거나 비겁했거나-새로운 비전의 부재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기존의 개혁세력은 추상적 당위론의 설파에는 능하다. 그러나 구체적 각론에는 약하거나 비겁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변화에 맞게 총론부터 다시 세워야 할 때다. 현 단계 한국 사회의 발전 조건과 방향, 그리고 목표에 대한 거시적 총론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예컨대 세계화시대의 국가발전전략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리 없이 한미FTA협상에 대한 책임있는 입장 표명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그 총론에서부터 출발하여 우리가 그간 회피해 온 개개의 각론에 대해서도 우리의 구체적 입장을 확정할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발전 잠재력을 훼손시키는 요인은 어떤 것이고 새로운 성장동력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시장과 규제에 대하여, 복지모델에 대하여, 기업과 노조에 대하여, 그리고 북한의 개혁개방과 주민 인권 문제 등에 대하여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정리하여 정책으로 제시하고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아야 한다.

세계적 경쟁의 바다에 별로 가진 것 없이 던져진 경제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중위권 국가의 집권세력, 혹은 정권수임세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가경제의 잠재력과 대외경쟁력을 어떻게 높여나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 설계와 실행일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양극화의 파도 속에 고달파진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식의 좌파 논리에 경도된 시대착오적 수구정당의 낙인을 모면할 수 없고, 우리에게 재집권의 길은 영영 요원해질 것이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 흐름을 보아도 기존의 좌파정당들은 대변신을 시도해왔다. 과거의 고답적 논리를 버리고 제3의 길을 모색한 정당들은 지지기반을 넓히고 집권에 성공했다. 그렇지 못한 정당들은 역사의 흐름에서 도태된 채 뒷방살이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5. 통합과 중도 개혁세력의 미래 좌표

요즘 당 밖의 많은 사람들이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내게 물어 온다. 이는 내가 두 달 이상을 장고에 들어간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나의 고민은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우리당이 내년 대선 국면에서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모르겠다. 당의 노선을 잘 정비하여 독자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하게 될지, 당을 하나로 추스르는 구심력을 상실한 채 사분오열, 풍비박산이 날지, 아니면 정계개편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연합세력의 주력부대로 기능하게 될 것인지 지금 시점에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당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동될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어떤 통합인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바람직한 통합의 성사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합치고 보자가 아니라 우선 우리부터 입장을 분명히 정리하고 제대로 무장하는 일이 가장 급선무이다. 우리의 국가발전전략은 무엇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그리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당모델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준비의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 어떤 세력통합도 반한나라당 연합전선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혹시 대선에서는 승리할 지 몰라도 역사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지금부터 준비하고 진지한 토론에 기초해 합의를 모색하는 통합은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대선 승리의 가능성을 더욱 높여줄 뿐 아니라 대선 승패와 관계없이 이 나라의 주류 대안 세력으로서 긴 생명력을 갖고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선 정당의 이념모델과 조직모델부터 말하자면 나는 미국 민주당이 우리가 지향점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공화당보다는 분명히 진보적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온정적인 정당이다. 그러면서도 소수 좌파로부터는 끊임없이 배격당하는 주류정당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중도개혁세력의 정당인 것이다.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우뚝 선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민주당은 보수 공화당에 만족하지 못하는 미국 사회 주류의 또다른 철학을 대변해서 절반의 세월을 집권해온 정당이며,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부시 이전의 미국’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온 정당이다.

한편 민주당은 충성스러운 뿌리 당원들이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공직 후보선출에 있어 국민의 참여를 혁명적으로 받아들인 미국 정당개혁의 선도자였다. 우리로서는 유럽의 계급주의 정치 전통에 따른 정당모델보다는 미국의 정당들이 훨씬 더 수범할만한 친근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원내와 중앙당의 분리처럼 우리가 실험했던 미국모델은 연방제 전통 등 우리와 분명 다른 현실의 반영이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과제인 듯하다.

세계화 속의 제3의 길

그러나 국가발전전략의 면에서는 우리가 반드시 미국모델을 따를 필요는 없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자신의 압도적인 파워를 내세워 미국식 경제체제와 표준을 세계에 강요해 왔다. 과거와는 달리 미국은 세계에 대해 유보없이 무한경쟁의 원리를 앞세워 자신의 이익을 관철해왔다. 신자유주의는 어쩌면 세계 자본주의 발달사의 반동이며 이기적 미국의 패권 논리에 다름아니다. 이 신자유주의를 우리마저 금과옥조의 시장주의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나라를 위한 이성적인 태도가 아니다.

한편 경쟁 원리의 확대를 모두 신자유주의로 간주하는 것도 지나친 단순화이다. 예를 들어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강대국들이나 일본까지도 미국 주도의 세계화 질서는 수용하면서도 자기 나라의 경제사회모델을 미국식으로 운용하지는 않는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미국 외에도 따라 배울만한 다른 선진국들이 있다. 세계화와 시장주의의 큰 원칙은 적극 수용하되, 역사적 배경과 국가 규모의 차이를 감안하고 우리가 배울만한 다양한 선진모델들을 참고하여 우리만의 국가발전 및 사회통합전략을 세울 일이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하고 국가의 장기 비전을 설계하는 데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북한문제이고 통일문제이다. 현재의 북한미사일파동이 우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고 미국과의 사이에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에게는 경제문제에도 북한 변수가 개입되고 거꾸로 북한변수를 우리의 경제발전전략에 포함해 생각할 수도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의 우리 역사 전개에도 북한문제는 피할 수 없는 상수의 고려 요소이다. 북한문제를 재앙이 아니라 축복으로 만들어가는 국가전략이 우리의 미래비전에 필수적이며 이것은 경제문제와 더불어 미국, 중국, 일본에 대한 외교전략의 양대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 - 릴레이 대논쟁을 전개하자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대안의 제시가 아니라 자기비판이고 문제제기에 불과하다. 사실 제대로 된 정당의 출발점에 대한 이러한 논의들은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그리고 이후의 몇차례 전당대회에서 벌써 이루어졌어야 했다. 과거의 관성에 매몰되고 닥쳐온 현실적 임무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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