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교수 “미국과 협력은 종속 아닌 자주성 향상”

  • 입력 2006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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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된 4종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원로학자 7명으로 구성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편집위원회’는 이들 교과서 중 이념적 편향과 오류가 있는 부분을 바로잡는 새 교과서 제작에 나섰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3년부터 고등학교에서 사용된 4종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원로학자 7명으로 구성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편집위원회’는 이들 교과서 중 이념적 편향과 오류가 있는 부분을 바로잡는 새 교과서 제작에 나섰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편집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14일 “현행 검인정 근현대사 고교 교과서는 민중 운동사일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안 교수는 또 ‘자주 국가’ 논란과 관련해서 “한국의 국가정책의 기본 방향은 건국 때부터 자립노선이 아니라 국제협력 노선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남북교류와 민족공조를 강조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자주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 결과로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국가가 불안해지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봐도 국제관계가 어려워지면 오히려 한국의 자주성이 훼손되고 경제 발전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행 검인정 근현대사 교과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현행 교과서의 역사 인식은 민중 운동사 중심이기 때문에 북한과 통일이 돼야 한국의 근현대가 완성된다는 취지로 돼 있다. 이 때문에 내용도 광복 이전 식민지 시대는 독립운동을 주로 다루고 있고 광복 이후 시대는 민주화 운동, 앞으로는 통일 운동에 주력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나.

“교과서를 살펴보면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이 외세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고 그 때문에 남북 분단이 됐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 1960년대 경제 발전에 대해서도 대외 의존적이고 정치적으로는 민중을 탄압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은 어떻게 봐야 하나.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은 분단의 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다. 한국의 독립은 독립을 위한 조건의 결여와 미소 양군의 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미군정의 실시와 남북 분단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뤄진 건국은 형식뿐인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출발하긴 했으나 그것은 그 이후의 한국정치체제의 기본골격이 되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건국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국제 관계 속에서 외국의 영향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외세에 의한 건국으로 인해 국가의 자주성이 훼손됐다는 주장도 있는데….

“당시 한국이 곧바로 자주를 추구했다면 오히려 자주성이 더 약해졌을 것이다. 전형적인 예가 북한이다. 김일성의 북한은 자주 노선을 추구했지만 주민들의 기아로 귀결됐다. 반면 한국은 한미동맹, 한미일 공조 등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뤄냈고 국제 협력을 추구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를 종속적 발전이라고 비판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의 자주성은 더 강해졌다.”

―새로운 교과서는 어떤 방식으로 서술할 것인가.

“사회 운동 중심으로 서술돼 있는 지금의 교과서는 잘못된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는 정치적 관계가 경제적 관계를 규정했다. 따라서 서술의 순서도 정치적 관계를 서술한 이후에 경제적 관계를 서술할 생각이다. 독립 운동 및 각종 사회 운동은 정치 경제를 서술한 이후에 서술하는 것이 옳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와는 완전히 다른 역사인식인데 교과서로 채택될 수 있나.

“현행 교과서를 수정하는 정도로는 안 되고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 제작 지침과 다를 수 있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정식 교과서로 채택되지 못하더라도 이상적인 교과서를 집필해 내년 초에 출판해 시판할 것이다. 모범적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제시할 생각이다. 그리고 2009년부터 시작되는 제8차 교육과정과 준거안이 확정되면 거기에 따라 수정, 보완하는 방법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교재 집필에 대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교 교과서에 대한 학자들 간의 시각차가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차이는 현행 교과서가 운동권이 운동권의 역사를 쓴 것이라면 우리는 한국인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사를 쓰려고 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등 이념 갈등이 심한데 이념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이념이라는 것은 모두 붕괴됐다. 이념적인 대결을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모든 것을 보면 된다. 지금 북한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객관적인 사실이고 북한 주민들이 기아로 고통 받고 있는 것도 객관적인 사실 아닌가.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무엇이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판단하면 된다.”

―근현대사와 함께 중고교의 역사교육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나.

“근현대사의 경우에는 고등학교뿐 아니라 초중고교 교과서가 같은 맥락으로 씌어 있기 때문에 같은 문제가 있다. 다만 고등학교 2, 3학년의 경우 근현대사가 역사와는 별도 과목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문제가 부각됐을 뿐이다. 전근대사의 경우에는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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