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해]삼계탕 장사와 낙하산

  • 입력 2006년 8월 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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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삼계탕 장사라도 하시든지요.”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어느 봄날.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공신(功臣)인 염동연(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씨와 이강철(현 대통령정무특별보좌관) 씨를 청와대로 불러 점심을 함께했다. 386 참모들과 달리 이들은 청와대에 입성(入城)하지는 않았다. 끈끈한 동지 관계로 맺어진 이들이 최고 권부(權府)인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을 만나는 감회는 남달랐다.

그런데 정작 노 대통령은 “정치를 하려면 확실히 제대로 하고 아니면 삼계탕 장사를…”이라며 뜬금없이 ‘삼계탕’ 얘기를 했다. 큰 선물을 줄 것으로 생각했던 두 사람은 대통령의 말이 당혹스러웠다(청와대 근처엔 장사가 아주 잘되는 삼계탕 집이 하나 있다. 이 특보는 이 근방에서 지금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대통령이 논공행상(論功行賞) 차원에서 절대 감투를 주지는 않겠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대통령의 인사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삼계탕 장사’ 얘기는 이후에도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회자(膾炙)되곤 했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청와대 참모들도 상당수 ‘물갈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청와대를 나가 ‘큰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자리를 잡지 못한 일부 퇴직 고위 공무원들처럼 상당 기간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나를 이렇게 내팽개칠 수 있느냐…”며 사석에서 분노를 토해 내는 사람도 더러 봤다.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실을 들락거리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난 것도 그때쯤이다. 이들은 “자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답답해서…”라며 청와대를 기웃거렸다. 어떤 비서관은 청와대를 나간 뒤 1년 반이 지나도록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좋은 자리로 갔다”는 소식이 조금씩 들려오더니 대부분 ‘그럴듯한’ 자리를 하나씩 꿰차기 시작했다.

이전 정부와 달리 지금 청와대는 무조건 사람을 점찍어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법은 없었다. 전공이나 사회 경력 또는 담당 분야를 모두 감안해 ‘적합한 자리’를 본인이 먼저 직접 구하도록 했다. 측면에서 ‘지원사격’은 하는 것 같았지만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 듯했다.

문제는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이나 재계에선 “낙하산 인사가 예전 정부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과거 정부에서 300명쯤 낙하산 인사를 했다면 지금은 3분의 1도 안 된다”고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최근 ‘낙하산’ 소동이 벌어진 한국증권선물거래소 감사 선임 과정을 보면서 ‘대통령 뜻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래소는 공기업 성격에서 벗어나 주식회사로 바뀌었다. 낙하산 자체가 부적절한 기관이다. 선거에서 잇따라 낙마(落馬)한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이 경력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유력하다고 한다. 정권 출범 초 “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敗家亡身)’할 것”이라고 한 대통령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코드’부터 먼저 따지는 보은(報恩) 인사로는 낙하산이란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내 자식에겐 관대하고 남의 자식에게는 엄한 잣대를 들이대서야 누가 고개를 끄덕이겠는가. 대통령의 ‘삼계탕 장사’ 얘기가 바로 엊그제였는데….

최영해 경제부 차장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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