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회의에 대통령은 없었다

  • 입력 2006년 7월 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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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혹… 착잡… 진땀… 6일 국회에 출석한 안보 관련 부처 장관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정부의 늑장 대처와 정보 부재 등에 관해 쏟아지는 의원들의 질타에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석 통일부(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윤광웅 국방부(국방위원회), 반기문 외교통상부(통외통위) 장관. 오른쪽은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김만복 국가정보원 1차장. 이종승 기자·김경제 기자
곤혹… 착잡… 진땀… 6일 국회에 출석한 안보 관련 부처 장관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정부의 늑장 대처와 정보 부재 등에 관해 쏟아지는 의원들의 질타에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석 통일부(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윤광웅 국방부(국방위원회), 반기문 외교통상부(통외통위) 장관. 오른쪽은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김만복 국가정보원 1차장. 이종승 기자·김경제 기자
청와대와 정부는 지난해 11월 3단계 위기관리 대응체제가 갖춰져 완벽한 현장 대응이 가능해졌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정작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 대응과정에선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는 왜 안 열렸나=노무현 대통령은 5일 오전 5시 대포동2호 발사 보고를 접했다. 이후 노 대통령이 관저에서 직접 주재한 안보관계 장관회의는 6시간이 지난 오전 11시에 열렸다. 중간에 NSC 상임위원회 회의가 열렸지만 의장인 노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고 상임위원장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회의를 주재했다.

정치권에선 북한 미사일이 우리나라에 미칠 안보적 심각성을 감안한다면 노 대통령이 직접 NSC 회의를 주재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이런 사안에 대해 NSC 의장인 노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지 않았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장성민 전 의원은 “이번 사태는 실질적으로 사정권에 들어가는 미사일 7발을 맞은 것으로 엄청난 위협”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NSC 회의를 직접 주재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직무 유기”라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NSC 회의를 주재한 것은 모두 5차례. 2003년 3월과 10월 이라크전 발발 및 이라크 추가 파병과 관련해 회의를 주재했고, 지난해 7월엔 북핵 6자회담 관련 대북 중대제안 관련 회의 등이었다.

▽군 비상태세 발령 수위는 적절했나=국방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라 관련 조치를 취했다고 6일 밝혔다. 20여 일 전부터 10여 명의 정보작전 요원으로 구성된 북한미사일 대응 태스크포스(TF)가 가동 중이었고, 이들은 첫 번째 미사일 발사 9분 뒤인 5일 오전 3시 41분경 미국으로부터 발사 정보를 최초 접수한 직후 단계적으로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는 것.

당시 후속조치는 ‘5일 오전 3시 45분경 주요 군 관계자들에게 상황 전파→오전 4시 반 긴급조치반 국방부 도착→오전 5시 위기관리위원회 개최→오전 5시 40분 한미 국방관계자 전화통화→오전 6시 20분 전 군에 군사대비태세 강화 지시’ 순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일본 측의 대응은 더 빨랐다. 첫 상황 전파는 우리 측과 비슷하게 이뤄졌지만 일본정부의 긴급 경계발령은 오전 3시 52분에 떨어졌다.

4시 반에 긴급조치반이 우리 국방부에 도착했을 때 일본에선 총리 관저에 대책실이 세워진 뒤 일본 관리들은 긴급회의에 들어가려 했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당초 노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한 시간이 5일 오전 5시라고 했다가 북한의 대포동2호가 5시 1분에 발사된 것으로 최종 확인된 이후 ‘최초 보고 시간은 5시 12분’이라고 정정했다.

▽위기 정보 전파는 제대로 됐나=정보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사전 징후를 3일경 파악했다. 북한이 북측 선박에 대해 4일부터 11일까지 동해 인근 지역을 항해 금지하도록 한 정보를 입수했다. 이 정보는 “미사일 발사로 잔해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이곳을 피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정보를 국내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실을 모르고 해당 해역이나 상공을 통과하는 어선이나 비행기가 있었을 경우 예상치 못한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군 당국이 북한이 항해금지 해역을 선포할 경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즉각적인 후속 조치가 위기관리 매뉴얼에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편 일본은 월드컵 경기가 한창인 오전 4시 40분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을 긴급 뉴스로 알렸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렇지 못했다. 비상사태 때 TV 방송과 라디오를 활용한 위기 전파 시스템에 허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 대통령 잠 깨울 만한 사안이란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오전 5시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청와대는 발표했다. 대통령이 잠을 자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잠을 깨울 정도의 보고 사안은 어떤 게 있을까.

청와대 관계자들은 주로 대통령의 고유 영역인 외교 안보 현안 중 ‘긴급 보고 사안’이라고 말한다. 아군의 교전 상황은 물론이고 독도를 둘러싼 충돌 등 외국과의 긴장 고조 상황, 국민의 심각한 인명 피해, 북핵 6자회담 등 초미의 외교사안의 중대 기류 변화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시차상 아시아 쪽 일보다는 구미 쪽 사안이 심야 보고 사안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2004년 6월 김선일 씨 납치 테러사건은 수시로 노 대통령의 잠을 깨웠다.

보고할 국내 사안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에서 취합한다. 대통령에게 심야 보고를 할지는 국정상황실장이 결정한다. 외교 안보 사안은 통일외교안보정책 수석실의 당직실에서 취합해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의 보고 체계를 거친다.

수석비서관이 정책실장과 협의해 대통령 긴급 보고 사안이라고 판단하면 당직실에 지시한다. 당직실에서는 대통령 관저에 24시간 대기하는 비서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고, 이 비서실 직원이 대통령이 자는 방으로 전화를 건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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