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연욱]靑 ‘한미정상 통화’ 확인도 못해 준다니

  • 입력 2006년 6월 2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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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공동선언문 타결 직후 청와대는 장문의 보도자료를 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20일) 오후 8시 40분부터 약 20분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4차 6자회담 결과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자료는 “이번 한미 정상 간 통화는 참여정부 출범 이래 11번째”라며 통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21일 일부 언론이 이것이 노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의 마지막 통화이고, 그 이후 9개월간 전화 통화가 없었다고 보도하자 청와대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정상 간 전화 통화 내용은 일일이 확인해 주는 것이 아니다”며 보도에 유감을 표시했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 글을 올려 한미 외교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분야 공무원’들을 통해 한미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만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물 먹은 것 아니냐는 격조 없는 우려를 하는 모양”이라며 “나라 걱정을 하려면 제대로 하시오”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이번 청와대의 대응은 통화 시간과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11번째’라고 통화 횟수까지 공개한 9개월 전과 너무 다르다. 청와대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 러시아 정상 등과 나눈 전화 통화도 구체적으로 소개해 왔다.

청와대가 당시 정상 간의 대화 내용까지 공개했던 것은 한미 정상 간의 전화 통화가 ‘외교안보분야 공무원’ 간의 대화를 뛰어넘는 ‘정치적 함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언론이 외교라인 간 100번의 실무 접촉보다 단 한 번의 정상 간 접촉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북한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신중론’과 미국의 ‘강경론’이 배치돼 한미 간의 이상기류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는 상황에서 국민은 한미 정상 간의 전화 통화 여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을 때는 구구히 설명하다가 통화하지 않았을 때는 ‘일일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청와대의 이중적 태도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할 뿐이다.

정연욱 정치부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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