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주여,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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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노래의 가사가 각별히 가슴에 와 닿고, 멜로디가 귓전에 계속 맴돌 때가 있다. 요즘엔 얼마 전에 본 뮤지컬 ‘요덕스토리’에 나오는 ‘기도’라는 노래가 그렇게 문득문득 떠오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일용할 양식은 바라지 않아요…. 다만 우리를 즉결심판대에 세우지 마시고 이곳 수용소에서 구하소서.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에도 와 주소서. 아버지, 제발!’

기독교의 ‘주기도문’을 패러디한 이 곡은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는 북녘 동포들의 처절한 절규를 담고 있다. 탈북을 시도했거나 남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등 자유세계를 동경한 사람들, 국군포로, 북의 체제를 비판한 사람들이 공개 처형, 고문, 강간을 당하며 지옥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곳이다.

요덕 수용소 수감자들이 ‘천국’처럼 생각하는 남한에서도 과거 군사독재 시절엔 고통스러운 현실을 감내하기 어려워 신(神)에게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 1970년대 초 김지하의 글에 김민기가 곡을 붙인 ‘금관(金冠)의 예수’도 그런 경우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유신(維新) 시절엔 금지곡이던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1980년 봄 어느 대학에서 공연한 같은 제목의 연극을 보면서였다. 신군부의 권력 찬탈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횃불처럼 타오르던 시기였다. 노무현 정권에 참여한 운동권 출신 중에는 당시 권력의 인권 탄압을 소리 높여 규탄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그들이 이젠 북한의 인권 참상을 외면하고, 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북을 자극한다’고 오히려 나무란다. 세월 탓으로 돌리기엔 그들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유엔이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도, 유럽연합(EU)이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 정권과는 거래할 수 없다”고 선언해도,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만들고 매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지적해도 이 정권엔 ‘마이동풍(馬耳東風)’일 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인권 문제엔 유독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친북단체 회원들은 북한인권 국제대회가 열린 벨기에까지 날아가 엉뚱한 반미(反美) 집회를 벌인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가 전체가 인권 사각(死角)지대인 북한에선 수용소 안이든 밖이든 문명세계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존중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 곳에 국제사회가 촉구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르면 차츰 인권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믿는 것은 망상(妄想)이다.

우리 외교관들이 국제사회의 한국 인권 문제 거론에 곤혹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전까지 국제사회가 기울인 관심이 우리의 인권 상황 개선에 기여한 측면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인권 문제 제기를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한 압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북한 주민이라면, 요덕 수용소 수감자라면 ‘제발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을 못들은 체하는 남한 당국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당신은 과연 인간답게 사는 권리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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