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은령]인터넷 대화와 저널리즘

  • 입력 2006년 3월 2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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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사이버 공간에서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누리꾼과 직접 대화를 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란 제목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이 토론회는 네이트, 다음, 야후, 엠파스, 파란 등 5개 포털사이트가 주최했다.

토론회 제의는 포털이 먼저 했다. 다음미디어의 석종훈 대표는 “뉴스의 소스와 그 소스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직접 연결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해당 포털들은 14일부터 일제히 별도 페이지를 열어 누리꾼의 질문을 받았고 블로거나 인터넷 카페 운영자 등 5명을 패널로 선정했다.

당초 토론회 예정 시간은 60∼80분이었지만, 토론회는 2시간 만인 오후 3시에 끝났다. 노 대통령은 “손님(누리꾼)들 반응 보아가며 시리즈로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토론회 진행 중 한 누리꾼이 ‘세계 어느 나라에 이런 공간이 가능할 것인가’라고 댓글을 단 데에는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최고입니다’라는 주장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진솔하다’는 것이 ‘사실이다’와 동의어일 수 없고, ‘직접 대화했다’가 ‘민의를 제대로 수렴했다’는 의미도 아니기 때문이다.

토론회 개최가 본격화된 3월 초 이후 각 포털은 참여 여부를 두고 미묘한 입장 차를 보였다. 당초 참여 예정이었다가 불참한 네이버는 “우리는 미디어가 아니고 검색정보 포털이기 때문에 정치적 토론회 주최는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야후 역시 “대통령과의 대화여서가 아니라 유저(user)들이 많이 볼 만한 이벤트이니까 윈도(창·window)를 하나 더 연 것일 뿐”이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반면 다음은 “인터넷이 종이나 방송보다 미디어에 더 적합하다”고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과의 토론회를 두고 각 포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기 나름의 색깔을 가진 기존 저널리즘’과 달리 ‘포털은 중립적이다’라는 이미지를 깨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존 저널리즘과의 차별화만이 ‘미디어’ 혹은 ‘저널리즘’이라는 말에 예민해지는 이유는 아니다. 그것은 저널리즘이라는 정체성이 부여되는 순간 져야 될 책임과 의무의 무게 때문이기도 하다.

1997년 일단의 미국 언론인들은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 위원회’를 만들어 3년간 3000여 명이 참여한 작업 끝에 ‘저널리즘의 기본 요소’를 정리했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정보라는 말이 홍수를 이루지만 정작 저널리즘의 역할은 위축되는 역설이 왜 빚어지는지, 저널리즘 스스로 소홀히 한 ‘기본’이 무엇인지를 반성한 것이었다. 그 결론으로 제시된 요소 중 하나가 ‘저널리즘의 본질은 검증의 규율’이라는 것이다.

토론회에서 노 대통령은 시종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취재를 해 본 사람들은 안다. 누구나 기자에게는 자신이 알리고 싶은 것만을 얘기하며 사실 확인이 시작되는 순간 기자와 취재원 간의 끈질긴 밀고 당기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기자가 진실에 가까이 가는 과정에 호의를 베푸는 취재원은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토론회 중계가 끝난 뒤 기자들의 취재는 시작된다.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던진 안심의 메시지가 국민이 마음 놓고 건널 수 있는 돌다리인지를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의견과 정보의 ‘유통 창구’가 아닌 저널리즘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정은령 문화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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