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영 "靑 수석, 민노당 필요하니 사퇴하라"

  • 입력 2006년 3월 20일 1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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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영 前경찰청장. 자료사진 동아일보
허준영 前경찰청장. 자료사진 동아일보
“청와대의 사퇴요구를 거부한 다음날 시내에서 만난 청와대 모 수석이 ‘민노당을 끌고 가야 한다. 민노당의 협조가 필요하다’면서,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막대한 부담을 느낀다니 공무원으로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사퇴의사를 밝혔습니다.”

‘시위농민 사망사건’으로 지난해 연말에 사퇴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당시 상황을 이같이 설명한 뒤 “경찰 총수로 농민사망에 책임은 있지만 물러날 일은 아니었다”며 “임기제 청장을 내쫓는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다.

허 전 청장은 “결국 정치논리로 사퇴한 뒤 ‘내가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신동아는 20일 발간된 4월호에 허준영 전 청장의 독점인터뷰를 싣고 사퇴배경과 항간에 나도는 지방선거 출마설 등을 상세히 전했다.

허 전 청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청와대의 시나리오는 내가 오전에 사퇴하면 오후에 대통령이 대(對)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거부했다”며 “이 사건은 대통령이 사과하거나 내가 물러날 일이 아니었다”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시위도중 숨진 농민들은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과 70대 노인이었고, 과거 이한열 사건처럼 경찰의 명백한 과실로 사망한 것도 아니다”며 “이런 일로 경찰청장이 물러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27일 오전. 허 청장은 청와대측이 제시한 ‘사퇴 시나리오’를 거부하고 사퇴가 아닌 사과기자회견을 강행했다. 이날 오후 노 대통령은 계획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사과성명에서 ‘청장의 거취는 본인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대통령의 말이 섭섭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그런데 대통령의 뜻이라기보다 참모진 의견이라고, 옆에서 보좌를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퇴임식 때 눈물은 흘린 이유에 대해서는 “복합적이었죠. 수사권 조정문제를 비롯해 마무리해야 할 일이 많았고, 바쁘게 지내다 갑자기 그만두게 되니…, 그것도 어처구니없는 일로. 그릇된 정치가 공권력을 훼손한 것이죠.”라고 말했다.

또 사퇴이후 대통령 부부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에서 가졌던 부부동반 만찬도 소개했다.

“솔직히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갔죠. 수사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불법 시위과정에 발생한 일에 대해 국가원수가 대국민 사과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허 전 청장은 사퇴 후 모처럼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터키, 이집트, 그리스 3개국을 8박9일로 돌아보는 단체관광도 했고, 중국과 일본도 다녀왔다. 책도 여러 권 읽었고 요즘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업안내용 책 집필을 구상하고 있다.

인생의 1막을 마감하고 2막을 시작하고 있다는 그는 또한 “새로운 정치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당의 경북도지사 출마설과 관련해서는 “열린우리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자꾸 소문이 나돕니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이 ‘실망스럽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그 당으로 출마하느냐, 쓸개도 없느냐고….”라는 말로 일축했다.

한나라당 입당에 대해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요. 정치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과 새로운 정치를 해보고 싶어요. 주변에서 무소속을 권유하는 사람도 있어요.”라고 부인했다.

그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큰 선물을 주는 정치인이 돼야지, 그렇고 그런 싸가지 없는 정치인이 돼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정치를 한다면 품위유지나 하는 그런 정치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기사 전문은 신동아 4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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