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레임덕…임기 1년여 남겨두고 ‘내부 파열음’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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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의 경우 임기 후반의 레임덕이 언제 찾아왔을까.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위기를 맞긴 했지만 후계자를 사실상 지명했고 대통령선거를 자신의 주관으로 치르는 등 임기 말까지 전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국민 직선으로 등장한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레임덕에 시달렸다. 또 레임덕이 찾아온 시기도 갈수록 빨라졌다.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시절에는 임기를 1년여 남겨 둔 때에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1990년 3당 합당 때의 ‘내각제 밀약’을 깨면서 레임덕이 시작됐다. 1991년 12월 YS는 노 대통령에게 차기 대통령후보 조기 결정을 압박하면서 1992년 총선을 자신의 책임하에 치르겠다고 나섰다.

YS에게 밀리기 시작한 노 대통령은 YS가 대통령후보가 된 직후인 92년 8월 민자당을 탈당하고 거국내각을 구성했다.

YS는 임기를 1년 2개월여 남겨 둔 1996년 12월 국회에서 노동관계법을 날치기 처리한 게 레임덕의 촉발제가 됐다. 대통령의 독선정치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고 1997년 1월 한보사건이 터지면서 차남 현철(賢哲) 씨와 민주계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이후 여권 내에서 이회창(李會昌) 신한국당 대표 측이 YS를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세간에는 YS가 사실상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했다는 얘기까지 돌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는 집권 3년차인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나 그해에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가 줄줄이 터지면서 내부적으로 급속히 장악력이 약해져 갔다. 그 상황에서 2000년 12월 정동영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청와대 회동에서 동교동계 실세인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 결정적으로 레임덕을 촉발시켰다.

야당에 정국 주도권이 넘어갔고 2001년 들어서는 당시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에 대한 권력 줄서기가 벌어지고 있다는 자조가 여권에서부터 나왔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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