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號 취임2주년 하루 앞두고 ‘날벼락’

  • 입력 2005년 10월 2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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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20일 발표에 대해 현대그룹은 당혹해하는 모습이었다.

현대그룹과 현대아산 임원들은 담화 내용이 알려진 직후 현정은 회장에게 긴급 보고한 뒤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어 “좀 더 시간을 갖고 북측과 진지하게 대화해 나가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현대는 현 회장의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두고 나온 북측의 일방적 발표로 당분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복귀나 기존 고위 경영진의 인사 조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현대 내부의 분위기다.

현 회장은 이달 10일 현대아산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 전 부회장의 비리 사건을 ‘몸의 종기’라고 언급하며 현대그룹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를 퇴출시켰다고 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요구에 굴복해 ‘비리 감사’라는 정당한 업무를 수행한 임원을 인사 조치한다는 것은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국내 여론을 악화시킬 것이 뻔하다는 것이 현대의 판단이다.

현대가 지금까지 북한에 투자한 돈은 약 1조500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2000년 8월 북한 아태평화위로부터 경제협력에 관한 7가지 사업에 대한 30년간 독점권을 보장받으면서 5억 달러(약 5000억 원)를 북측에 지불했다. 또 금강산 관광에 따른 대가로 현재까지 약 5억 달러를 북한에 줬으며 금강산 및 개성 지역의 시설 투자비, 사업 운영비 등으로 5000억 원이 더 들어갔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7대 경협합의서’와 관련해 “합의의 주체가 다 없어진 조건에서 이에 구속될 이유마저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 “그렇다면 5억 달러를 현대에 돌려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현대 안에서는 앞으로 우리 정부가 합의서의 효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 김윤규 사태란

북한이 현대그룹과 모든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면서 그 이유로 거론한 ‘김윤규 사태’는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비리를 둘러싼 현대그룹의 내부 감사와 퇴출 결정을 말한다.

현대그룹은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현대아산에 대한 내부 감사를 통해 김 씨의 자금 유용과 비자금 조성, 직권 남용 등 각종 비리를 밝혀냈다.

현대는 이 같은 사실이 동아일보를 통해 특종 보도되자 8월 19일 김 씨의 대표이사직을 박탈한 데 이어 10월 5일에는 부회장직도 해임해 그를 퇴출시켰다.

북한은 김 씨의 비리가 공개되자 금강산 관광객 수를 줄이고 현대 측에 김 씨를 복귀시키라고 압박을 가해 왔다. 또 김 씨는 해외로 전전하면서 “대북사업을 경험 없는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현재도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北 의도 뭘까

북한이 현대와의 사업 전면 재검토 의사를 밝히고 나선 배경과 의도는 뭘까.

정부는 북측이 앞으로 현대와의 사업에서 이득을 더 많이 취하기 위해 압박작전을 펴고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대변인 담화는 엄포에 불과하며, 북측이 실제 현대와의 사업을 중단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북측이 장기적으로 남측 기업들 간의 경쟁체제를 조장해 유리한 조건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현대 측과 선을 긋기로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아태평화위는 현대와의 사업 전면 재검토 사유가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과의 ‘의리’ 문제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김 전 부회장을 퇴출시킨 현대 측을 비난했다. 그러나 김 전 부회장의 복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김 전 부회장의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북측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북측이 이번 담화를 통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을 강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김 전 부회장 문제를 일단락 짓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말하자면 북측이 김 전 부회장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성의를 보인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 담화의 기조는 현대 측이 명분만 제공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북측은 현대 측으로부터 개성 및 백두산 관광사업에서 큰 대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또 북측이 미국과 한나라당의 김 전 부회장 퇴출 관여 의혹을 제기한 것도 이번 담화의 성격이 매우 정치적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현대에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보다 앞으로 대남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생길 장애물을 미리 제거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는 것이다.

아태평화위는 담화에서 “현 회장과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 간 근친 관계로 볼 때 그들 사이의 밀약설도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현 회장의 모친은 한나라당 고위당직자 K 의원의 큰누나여서 현 회장과 한나라당 K 의원은 외조카-외삼촌 관계이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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