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도청팀’ 배후는… 수사초점 이동

  • 입력 2005년 10월 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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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보위원회는 7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국정원에 대한 비공개 국정감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5분여 동안 감사장을 공개했다. 감사장에 착석한 김승규 국정원장(왼쪽) 등 국정원 수뇌부의 모습. 전영한 기자
국회 정보위원회는 7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국정원에 대한 비공개 국정감사를 진행하기에 앞서 5분여 동안 감사장을 공개했다. 감사장에 착석한 김승규 국정원장(왼쪽) 등 국정원 수뇌부의 모습. 전영한 기자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도청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검찰 수사가 당시 정권 핵심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도청을 주도한 김은성(金銀星) 전 국내담당 차장은 DJ 정권 핵심 실세들의 ‘충복’으로 알려진 인물. 따라서 검찰 수사가 김 전 차장에 대한 조사를 거쳐 이들 핵심 실세들에게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장, ‘묵인’했어도 처벌 가능=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김 차장 재임 시절(2000년 4월∼2001년 11월) 도청 정보 보고서가 당시 원장들에게까지 올라갔다는 진술과 자료를 확보했다.

1차적인 관심사는 당시 원장이었던 임동원(林東源·재임 1999년 12월∼2001년 3월), 신건(辛建·2001년 3월∼2003년 4월) 씨 등이 도청을 지시했는지다.

현재로선 두 사람이 직접 도청을 지시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 같다. 국정원 관계자는 “임 전 원장은 재임 시절 대북 문제에 주력하느라 국내 문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신 전 원장은 감청 장비 폐기를 지시했다”며 “이들이 도청 지시를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신 전 원장과 김 전 차장은 관계가 극히 좋지 않았다는 게 국정원 관계자들의 일치된 전언이다. 신 전 원장은 DJ 정권 당시 ‘정치적 계보’가 달랐으며 이로 인해 둘 사이에 마찰과 갈등이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이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법처리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묵인’과 ‘방조’만 했어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전직 원장들은 자신들에게 보고된 ‘통신첩보 보고서’가 도청을 통해 얻은 정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이를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입증될 경우 이들은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림팀’과 닮은꼴=김 전 차장과 DJ 정권 핵심 실세들의 관계는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김기섭(金己燮) 국가안전기획부 운영차장과 YS의 차남 현철(賢哲) 씨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현철 씨나 DJ 정권의 일부 핵심 인사들 모두 공식 라인보다는 ‘비공식’ 라인을 통해 ‘정보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심에 김기섭 전 차장과 김은성 전 차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김은성 도청팀’이 YS 정부 시절 안기부 비밀도청 조직인 ‘미림팀’과 ‘닮은꼴’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이 “DJ 정부 시절 도청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힌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조직적’인 도청이라면 일정한 세력이 특정한 목적을 갖고 도청을 계속했다는 것. 그 목적은 결국 정권 실세들에 대한 ‘충성’ 목적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 전 차장이 DJ 정부 시절 국정원 도청을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김 전 차장의 배후였던 당시 정권 핵심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해 보인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김은성 前차장의 ‘빗나간 권력행사’▼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도청을 사실상 주도한 김은성(사진)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에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검찰 주변에선 “DJ 정부 집권 이후 몇몇 정권 실세에 의해 이뤄진 국정원의 파행 인사가 결국 DJ 정권에 부메랑이 돼 돌아오게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전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DJ는) 도청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당시엔 도청을 해서라도 정확한 정보를 보고하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국정원 과학보안국(8국) 내의 감청담당 부서 직원들을 심하게 다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8국에 근무한 직원 A 씨는 “김 차장이 국장 주재 회의에까지 참석해 고급 정보 수집을 강화하라고 지시하는 등 과욕(過慾)을 부려 모두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차장은 2001년 12월 ‘진승현(陳承鉉) 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불명예 퇴진한 이후 정작 자신이 도청 공포에 시달렸다. A 씨는 “김 전 차장이 가족 명의로 가입한 10여 개의 휴대전화를 갖고 다닌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02년 가석방된 뒤에는 외부와 단절한 채 자택에서 칩거 생활을 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김 전 차장은 특히 심한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최근까지 4년 가까이 정신질환 치료도 받고 있다는 것.

그의 한 측근은 “김 차장의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체포 이후에도 계속 약을 먹고 있다”며 “죄를 지었다면 책임을 져야겠지만 업무상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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