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동용승]北核해결, 샴페인은 이르다

  • 입력 2005년 9월 21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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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개최된 2단계 4차 6자회담에서 대어(大魚)가 낚였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 및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군사적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길게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고, 2002년 10월 이후 한반도에 더욱 짙게 드리워졌던 북한 핵의 암운(暗雲)이 걷힐 계기가 마련됐다. 이제는 어렵게 낚은 대어를 어떻게 잘 살려 나갈 것인가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10여 년 동안 끼었던 암운이 걷혀 가는 과정에서 나타날 환경 변화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역학 관계가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탈냉전 이후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변환 작업이 동북아에서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냉전의 고도(孤島)인 한반도에서 냉전 구조가 해체되면서 유럽 등이 경험한 것과 같은 변화의 바람이 미국의 군사변환 작업을 타고 한반도에 불게 될 것이다.

남북한의 역학 관계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의 관계 개선은 새로운 지형을 형성할 것이다. 세계 동서(東西)의 탈냉전 이후 남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했지만 북한은 그러지 못함으로써 고립이 가속화됐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앞으로 북한은 정상(正常) 국가로서 국제사회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BD) 등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주권국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는 잠정적 특수 관계가 아닌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남북한의 통일 논의도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방식과 형태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북한 경제는 회생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5개국은 대(對)북한 에너지 제공을 약속했다. 북한 경제의 가장 큰 애로 요인이 에너지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핵 문제도 표면상으로는 북한이 원자력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발단이 됐다. 미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 등으로 대북 경제 제재 완화는 물론 개발자금의 유입도 기대된다.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 변화가 기대된다. 외국의 시각으로는 남북 분단 상태에서의 북핵 문제가 군사 충돌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북한의 경제난이 계속되면 급작스러운 북한 붕괴에 따른 한반도의 불안정 상태를 예견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불안정 상태가 해소되면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고 기업들의 국내외 활동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임은 물론이고, 외국 투자자본도 한국 시장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한국 경제에는 이른바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기가 마련된다.

반면 큰 변화에는 격동이 따르기 마련이다. 공동성명에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벌써부터 출렁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시점을 경수로 제공 시점으로 못 박고 나왔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을 통해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이제부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각론에 대한 협의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북한이 이렇게 빨리 반응을 보인 것은 그만큼 절박한 상황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앞으로 각론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총론의 합의를 위협할 만한 내용이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다. 경수로 제공 여부와 시점, 북-미 및 북-일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를 다룰 포럼 구성, 한국의 대북 200만 kW 전력 제공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없다. 북한이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지도 관건이다. 환경 변화에 맞는 새로운 통일개념을 정립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모두가 신뢰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동성명은 6개국이 함께 신뢰의 첫 단추를 채운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렵게 낚은 대어를 죽이지 않도록 서로가 조심스럽게 환경을 만들어 갈 것을 기대한다.

동용승 객원논설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seridys@s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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