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선거구제 개편→대연정→개헌’ 구상하나

  • 입력 2005년 9월 1일 03시 04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오른쪽 아래)은 31일 청와대에서 중앙 언론사의 논설 및 해설 책임자 24명과 간담회를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히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같아지도록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석동률 기자
노무현 대통령(오른쪽 아래)은 31일 청와대에서 중앙 언론사의 논설 및 해설 책임자 24명과 간담회를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히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같아지도록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석동률 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31일 중앙 언론사 논설 및 해설 책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에 따른 약체 정부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대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기를 일치시키는 방법은 현실적으로는 개헌밖에 없다. 개헌 논의를 알리는 전조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촉구하면서 언급했던 ‘권력 전부 이양’, ‘임기 단축 고려’ 등의 폭탄성 발언도 결국 개헌이나 개헌에 준하는 절차를 밟아야만 실현될 수 있는 사안이다.》

▽개헌과 임기 단축=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임기 단축’을 거론한 것은 개헌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임기 단축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던 ‘새로운 정치문화와 새로운 시대’는 권력구조의 개편까지 포괄하는 정치판의 전면적인 변화를 상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권력구조의 개편과 관련해 내각제 개헌을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온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현재 내각제에 대한 어떤 결심이나 판단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여소야대의) 정치구도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해 내각제도 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결국 노 대통령이 언급한 임기 단축은 ‘혁명적인 정치상황 변화’, 이를테면 개헌 논의 등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올해 말까지 계속 연정론을 제기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내년 5월에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정치 개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둔 듯하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올해 안에 대연정과 선거구제 개편의 기반을 마련한 뒤 내년 지방선거 이후 정치구조를 바꾸고 내년 하반기에 개헌 논의를 한다는 정치 일정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임기 단축은 선거구제 개편이 이뤄지고 난 후의 문제”라며 “노 대통령의 생각은 내년 하반기에 권력구조를 고치는 개헌 논의를 하더라도 먼저 정치판부터 바꾸고 나서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헌은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대연정과 2선 후퇴=노 대통령이 언급한 ‘2선 후퇴’는 대연정 성사를 전제로 한나라당에 총리직과 인사권을 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자신은 대통령직을 유지하지만 상징적 역할만 하겠다는 것. 권력 이양 발언과 사실상 같은 맥락이다.

31일 간담회에서는 한나라당에 국무총리는 물론 각료 전원을 줄 수 있다는 발언도 했다. 그 경우 대연정은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연정이며, 열린우리당은 연정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대신 열린우리당은 국회 다수 의석을 발판으로 해 행정부를 견제하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이는 여야를 뒤바꾸는 혁신적인 발상으로,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의 연정 거부가 확고해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대통령제의 현행 헌법 하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정치적으로 축소 또는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이 30일 만찬에서 “만일 대연정 문제에 반감을 가진 의원이, 예를 들어 호남의 어떤 의원이 당을 떠나겠다고 할 경우 내가 먼저 당을 떠나겠다”고 말해 탈당을 언급한 대목도 관심이다.

대연정과 2선 후퇴의 전 단계로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당적을 포기하고 여야를 떠나 중립적 위치에서 국정을 관리하겠다는 구상의 일단을 표시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탈당을 시사했다기보다는 여당의 호남 의원들도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압박성 메시지”라고 설명한다.

다만 한나라당이 연정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탈당을 요구한다면 노 대통령이 이를 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제 개편과 정치판 바꾸기=대연정 제안 후 노 대통령은 일관되게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지역구도가 해소돼야만 현재의 대결적 정치문화를 바꾸는 게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노 대통령은 31일 간담회에서 “제안의 핵심은 당신들(한나라당)의 지역주의 기득권 내놔라. 그리고 흔들기만 하지 말고 책임도 져 보라는 얘기”라고 말해 선거구제의 개편 목적이 지역구도의 해소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이 즉각 대연정 제안을 거부한 후 “대연정이 싫고 위헌이라면 선거제도 정치협상이라도 하자”고 밝힌 데서도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집착을 엿볼 수 있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거나 권역별로 특정 정당이 의석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데 정치적 생명을 걸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편은 한나라당뿐 아니라 열린우리당에서도 반대가 있을 수 있다. 영호남 지역 의원은 기득권을 일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지면 영남 지역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석의 30%가량을, 호남 지역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20%가량 의석을 잃을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선거구제 개편은 정치판의 근본적 변혁을 수반하지 않고서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노 대통령이 지역 기득권에 집착하는 당 지도부에 얽매여 여야 간 대립과 정쟁으로 지새는 현재의 정치 풍토를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정치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