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아르빌 손님과 코리

  • 입력 2005년 4월 2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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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쯤 이라크 아르빌의 한 초등학교 교사(50)가 자이툰부대에 감사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갈가리 찢어져 비탄에 잠겼으며 도시와 마을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 이외에 우리를 도울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우리에게 한국인을 보냈습니다. …당신들(자이툰부대)이 우리를 친구라고 말하듯 당신들도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자 존경하는 손님이며, 쿠르드족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만나야 ‘관계’가 시작된다. 편지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아르빌은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도시다. 그러나 자이툰부대가 가기 전까지 우리에게 아르빌은 없었다. 국가 간의 교류는 물건과 돈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만남으로 완성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동아일보와 대한축구협회 초청으로 11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던 아르빌 지역 고교축구단 29명은 ‘귀한 손님’이었다. 비록 어리지만 ‘아르빌의 대표 주민’으로서 민간 교류의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우리의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방문은 제 인생의 잊지 못할 한 페이지가 됐습니다. 더욱 열심히 자이툰사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결국 쿠르드를 위한 저의 작은 투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고, 멋있고, 위엄 있는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한때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귀국해서 그들이 보낸 e메일이다. ‘코리’(쿠르드어로 한국)와 ‘할크 코리’(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곳곳에 배어 있다.

전화(戰禍) 속의 이라크를 빠져나온 것 자체가 또 다른 전쟁이었다. 아르빌에서 한국에 오는 가장 빠른 길은 쿠웨이트를 거치는 것이다. 그러나 쿠웨이트는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그러자 자이툰부대에 부식을 납품하는 키르기스항공이 해결사로 나섰다. 부식을 내려놓고 돌아가는 비행기로 선수단을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까지 태워주고, 거기서부터 인천까지는 정기 항공편을 이용하는 우회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키르기스스탄에서 갑자기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정국이 혼미에 빠지면서 이 계획마저 무산될 위기에 몰렸다. 출발 직전까지 비행기의 이륙을 보장해 준 당국자는 아무도 없었다.

초청하는 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르빌 손님’들은 그렇게 어렵사리 한국에 올 필요가 있었을까. 12일에 벌어진 중경고 축구팀과의 첫 친선경기에 그 답이 들어 있다. 양국의 젊은이들은 축구공 하나를 놓고 격렬하게 몸으로 대화를 나눴다. 중경고 응원단은 양쪽 모두를 열심히 응원했다. 1-1로 경기가 끝난 뒤 선수와 응원단은 모두 운동장에서 얼싸안고 하나가 됐다. 그런 경험은 이라크 선수도, 중경고 학생들도 처음이었다. 양국 젊은이들은 ‘우정’과 ‘평화’를 몸으로 체험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을 초청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정(情)으로 재고, 나라와 나라의 거리는 외교로 잰다. 우리의 아르빌 손님 초청은 정에서 시작해 민간 외교로 성사된 일이다. 그들의 한국 방문이 코리와 이라크, 할크 코리와 이라크인의 거리를 좁혔을 것으로 믿고 싶은 이유다.

심규선 논설위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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