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日 ‘배상-사과’ 공개거론]발언 배경

  • 입력 2005년 3월 1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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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朴대표 악수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1일 서울 중구 정동 유관순 기념관에서 3.1절 기념사를 하기 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한일간의 예민한 사안인 ‘배상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한일관계에 파란을 예고했다. 석동율 기자
盧대통령-朴대표 악수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1일 서울 중구 정동 유관순 기념관에서 3.1절 기념사를 하기 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한일간의 예민한 사안인 ‘배상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한일관계에 파란을 예고했다. 석동율 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일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전례 없이 일본 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그동안 일본 정부와 국민이 스스로 알아서 과거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기조를 유지해 온 것과는 크게 다르다. 과거 문제로 한일관계가 손상돼서는 안 된다며 임기 중 과거사 문제를 외교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던 노 대통령이 일본을 이렇게 비판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대일(對日) 강경 발언 왜 나왔나=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의 절반가량을 한일 과거사 문제에 할애했다. “(자기반성 없이는) 아무리 경제력이 강하고 군비를 강화해도 이웃의 신뢰를 얻고 국제사회의 지도적 국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일본의 자존심을 자극했고, “법적인 문제 이전에 인류사회의 보편적 윤리, 이웃 간 신뢰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자세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일본 내에서 극도로 민감한 사안인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일제 치하에서 한국인이 당했던 고통을 직접 비교해 일본 측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기념사 원고를 준비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상당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말해 이날 발언이 준비된 것임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1월 17일 한일협정 문서 공개와 연계시켜 해석한다. 한일 과거사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로 한 정부의 의지를 노 대통령이 직접 재천명했다는 것이다.

한편 노 대통령이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우리 정부는 절제하고 있다”고 밝혔던 점에 비추어 노 대통령이 최근 한일 관계가 ‘절제의 선’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양국이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로 선포했음에도 일본이 오히려 독도 문제로 한국민의 대일감정을 자극하는 데 대한 실망이 정부 안팎엔 널리 퍼져 있다.

▽과거 피해 ‘배상’ 거론 이유=노 대통령은 “배상할 것은 배상해야 한다”는 민감한 발언도 했다. 일제하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마무리됐다는 일본의 입장과는 다른 시각을 내비친 셈이다.

한국 정부는 당시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 등 모두 8억 달러를 받았고 일본 정부는 이것으로 강제 징용, 징병 피해 한국인에 대한 개인 배상 문제를 해결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물론 청와대 측은 “피해 배상에 대한 재협상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발언 내용을 보더라도 일본이 자발적으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언급에는 청구권 협상 때 제기되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원폭 피해자, 징용 사할린 동포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측이 최소한 개인 차원의 배상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 방식이라며 제시한 ‘진실 규명→사과 또는 반성→배상→화해’라는 절차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독도 문제나 4월로 예정된 역사교과서 검정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이 같은 보편적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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