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다 죽은 분들 맺힌 恨 이젠 풀릴까”

  • 입력 2005년 2월 21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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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前 고통 어찌 잊으리”21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들이 임득규 옹(왼쪽) 등 강제동원 피해 신고자들을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벌였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신고자들은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익산=변영욱 기자
“60년前 고통 어찌 잊으리”
21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들이 임득규 옹(왼쪽) 등 강제동원 피해 신고자들을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벌였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신고자들은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익산=변영욱 기자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힘이 더 있었다면 진작 돈을 받았을 거여. 나라에서 진작 조사를 했어야지 한을 품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90세가 다된 노인들의 말은 어눌했지만 60여 년 전 일제 강제동원 당시를 기억하는 눈빛은 분노로 가득했다.

21일 오후 전북 익산시 황등면 죽촌리 화농마을 경로당.

일제강점기에 노무자로 강제동원됐다고 신고한 생존자들에 대한 현지 방문조사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됐다.

이날 조사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생존 노무자들을 대상으로 피해 신고사실에 대한 진위를 확인하고, 증거물 확보를 위해 녹취 및 녹화를 하는 순으로 이뤄졌다.

이 마을 임득규 옹(87)은 25세 때인 1943년 남태평양 남양군도의 나바우 섬으로 징용됐다.

“당시 머슴들 1년 새경이 120원이었는데 한 달 월급으로 이 돈을 주겠다고 했고 국법이니 가기 싫어도 가야 된다고 해서 끌려갔지.”

임 옹은 전북 군산에서 배를 타고 보름 만에 도착한 섬에서 2년 반 동안 비행장 활주로를 만들고 배에서 짐을 내리는 일을 했다.

처음 두 달간은 돈을 주더니 그 뒤부터는 돈은커녕 밥도 주지 않아 산에서 풀을 뜯어다가 죽을 쒀 끼니를 이어갔다.

당시 징용자 대부분이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각기병에 걸렸고 상당수는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비행기 폭격으로 숨졌다.

임 옹의 아들인 이 마을 이장 종석 씨(54)는 “아버지가 징용에 끌려갔다 오신 후 관절염 등 온갖 질병을 앓았고 최근에는 치매와 우울증으로 고생하신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만 10, 20대 청년 5명이 징용에 끌려갔고 현재 3명이 생존해 있다.

일부 청년들은 징용을 피하기 위해 밤마다 도망을 다녀야 했고 객지로 떠난 사람도 상당수다.

일본 규슈(九州)탄광에서 일했던 이 마을 한형석 옹(86)은 “2년 동안 죽으라고 일을 했지만 한푼도 받지 못했다”며 “아침에 일터로 나가면서 점심용으로 깻묵 밥 한 주먹을 싸갔지만 배가 고파 오전에 먹어치우고 오후에는 굶어야 했다”고 말했다.

익산=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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