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해저 나가이키탄광 韓人수몰 추모제

  • 입력 2005년 1월 30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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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60년이 넘도록 이토록 차디찬 바다 속에 누워 계시다니요.”

일제강점기 말 한국인 강제징용자 13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나가이키(長生)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가 29일 오전 일본 야마구치(山口) 현 우베(宇部) 시 니시키와(西岐波) 해안에서 열렸다.

참가자는 유족 등 100여 명. 희생자의 후손들로 구성된 유족회(회장 김형수·金亨洙)가 1992년 처음 추모제를 올린 지 올해로 14번째이다.

당시 사고로 부친을 잃은 전석조(全錫祚·66) 씨는 “하루 빨리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해 고향땅에 모셔야 할 텐데…”라며 추모제가 진행되는 2시간여 내내 흐느꼈다.

1942년 2월 사고 당시 나가이키 탄광은 광원 1000명에 연간 석탄 생산량이 15만 t에 이르는 일본의 최대의 해저탄광이었다.

탄질은 우수했지만 탄광이 바다 밑에 위치해 사고의 위험이 큰지라 일제는 한국인 징용자를 주로 광원으로 투입했다.

당시 사고로 숨진 183명 가운데 74%인 136명이 한국인이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갱도가 바다 쪽으로 2km나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바닷물이 새는 사고가 잦아 인부들이 항상 불안해 했데요. 물이 새 작업하다 도망쳐 나오면 입구를 지키던 일본인 간부들이 ‘물 좀 샌다고 바로 죽느냐’며 마구 때리기 일쑤였다고 해요.”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사고 당시 물이 새자마자 곧바로 대피했으면 목숨을 건졌을 수도 있었던 광원들이 머뭇거리다 숨진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당시의 작업 분위기를 이같이 전하며 일제에 대한 울분을 터뜨렸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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