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9급 신화’…김완기 인사수석 내정자 인생유전 화제

  • 입력 2005년 1월 20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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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기(金完基·사진)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 내정자는 공무원 사회에서 ‘고졸 9급 신화’로 널리 알려진 입지전적 인물이다.

전남 곡성 출신인 김 내정자는 1961년 광주고에 수석 입학할 때까지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9급 공무원으로 공직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중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장남으로 단칸 셋방에서 병약한 어머니와 6남매나 되는 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 때에는 납부금을 내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고, 졸업식 날 학교에 가지 않고 무등산에 혼자 올라가 마음을 달래야 했다.

졸업 후 흙벽돌 장사를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맡았던 그는 1966년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전남 광산군 서창면에서 면서기보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워낙 글 솜씨가 뛰어나 1971년에는 전남도청 문화공보실에 근무하면서 도지사의 연설문 담당으로 일했다. 유신 직전인 이때 박석무(朴錫武) 전 의원 등 재야운동권 인사들과 가깝게 지냈고, 공무원 신분이었지만 전남대 학생운동권에서 부정기적으로 배포했던 ‘녹두’, ‘함성’과 같은 지하유인물의 필경과 등사를 몰래 해줬다. 엄혹했던 유신 시절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돼 도피 중이던 고 조영래(趙英來) 변호사를 숨겨준 일도 있다. 김 내정자는 당시의 일에 대해 “자랑거리는 아니다”라며 입을 닫았다.

고졸 출신이지만 일벌레로 특유의 성실함을 인정받은 그는 1973년 중앙부처인 내무부로 발령을 받았고 이때부터 전남 구례·나주군수, 내무부 행정과장, 행정자치부 공보관, 광주 행정부시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직자로 출세하려면 야간대학이라도 다니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으나 “내가 실력으로 하면 되지, 형식적인 장식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소탈하고 격의 없는 성격이어서 부하 공무원들에게서 신망을 받았고, 61세의 나이지만 요즘도 젊은 사람들과 쉽게 어울린다.

이런 그의 인생궤적 때문에 김 내정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여러 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얘기를 듣는다. 19일 노 대통령은 김 내정자를 청와대 관저로 불러 아침식사를 함께하면서 김 내정자의 과거 역정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다는 후문이다.

한편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 내정자는 11개월 만에 다시 민정수석으로 복귀했다. 이에 따라 인사 검증과 추천을 각기 맡는 민정-인사수석은 이전처럼 영남-호남 출신의 구도가 됐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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