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김영봉]대통령께서 새해 선물을?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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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 저는 착한 아이가 되겠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꼭 컴퓨터를 주세요.” 아이의 기도소리가 갑자기 커지자 형이 놀라 “너 왜 그래?” 하고 묻는다. 일곱 살배기는 계면쩍게 대답한다. “부엌에 있는 엄마가 꼭 들어야 한단 말이야.”

일곱 살배기도 산타가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만약 산타가 그 많은 선물을 다 챙겨 온다면 이 세상에 몇 백, 몇 천만 명의 산타가 있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수많은 어른들은 이를 모른다. 정치가가 그들 모두에게 왕관을 주겠다고 공약하면 모든 이가 다 왕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일부 정치가들은 진짜 자기가 산타인 양 착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포퓰리즘으론 빈곤해결 못해▼

우리 대통령은 국민에게 많은 선물을 약속한다. 그는 학벌과 지역의 기득권을 없애서 모든 이가 다 좋은 학교와 좋은 일자리를 얻고 과거의 한을 풀어 주는 사회를 말해 왔다. ‘낙오병을 모두 보듬고 가는 선임하사관 대통령’이 되겠다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여권은 이런 따뜻한 대통령을 가로막는 야당, 신문과 우파 보수를 비난해 왔다.

그러나 국민은 지도자의 온정이 일반 시민의 온정과 다름을 알아야 한다. 시민 개인은 자신의 몸과 재산을 희생해서 남을 돕는다. 반면 국가 지도자는 어떤 누군가로부터 자리나 물건을 빼앗거나 양보 받아서 그의 이름으로 베푼다. 이때 ‘모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상투어가 동원되나 이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정치꾼의 속임수다. 옛 소련 중국 북한 아르헨티나 등 국가 리더가 전 국민을 시혜하려고 했던 나라는 오히려 국민을 가난과 구속의 구렁으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지난 1년 우리나라에는 실직, 폐업, 파산과 동반 자살까지 특히 빈민 서민계층의 고통이 헤아릴 수 없이 늘었다. 다른 나라는 모두 잘돼서 수출이 엄청나게 늘었는데도 온정적인 대통령을 뽑은 우리에게는 고통이 더욱 늘었다. 이 많은 고통을 대통령이 어떻게 다 보듬고 갈 것인가. 지도자가 낙오병만 추스르면 일선에서 피 흘리는 장병의 사기는 당연히 떨어진다. 고지는 자꾸 빼앗기고 가망 없는 교전에 낙담한 병사들이 이탈하고 부상 낙오자가 산처럼 쌓이면 이 군대는 싸우기 위한 군대인가, 낙오를 위한 군대인가.

총칼의 전쟁터건, 경제 전쟁터건 군율을 서슬같이 세워 용사는 상 주고 일탈자는 가차 없이 벌하는 지휘관이라야 우리 모두의 생명을 의탁할 수 있고, 낙오자 상이용사 전몰유족 모두가 전공(戰功)을 배분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가 나빠질수록 온정적 대통령에게 기대는 국민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포퓰리즘이 가난을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런 악순환은 어떤 집단도 꾸어서는 안 되는 악몽이다.

정권은 대통령 말씀을 너무 비약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정부는 좌파 정책을 편 바도 없고, 언론의 저주, 야당과 기업의 비협조가 경제 발목을 잡았다고 말해 왔다. 그러면 끊임없었던 대통령의 인기 발언, 여당의 정파적 좌파적 개혁, 정부의 반시장적 교육정책과 언론정책, 여권 집단이 키우는 반기업, 반미 정서 등은 다 무엇인가. 강력한 대통령은 국회, 방송, 시민단체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데 누구를 탓하는가.

▼경제올인 앞서 시장신뢰 얻어야▼

최근 대통령이 변모하고 내년부터는 경제에 다걸기(올인)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과거에 무상하게 샜던 바가지다. 싸늘해진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 몇 개 친(親)시장 정책만 동원한다면 냉각된 경제에 불이 붙겠는가. 진실로 대통령이 바뀌었다면 그의 어록대로 ‘시민혁명’ 차원의 시장친화적 반전을 오직 행동으로 보여 국민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경제주체를 불안케 하는 개혁 입법을 단숨에 정지하고 자나 깨나 시장과 기업이 무엇인지를 공부해야 할 것이다. 집권집단의 소양과 기호가 너무 다르니 분명히 능력에 부칠 것이나 대통령은 과거에 초인적 인내력, 지도력과 돌파력을 보이지 아니했는가. 그렇게 솔선수범하기를 몇 달만 하면 친시장 세력은 구름처럼 움직일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새해에는 정말 이런 선물을 받을지도 모른다. 근년에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는가.

김영봉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경제학 kimyb@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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