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기택/300조 국책사업 걱정된다

  • 입력 2004년 8월 23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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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여 동안 12개 대통령자문국정과제위원회가 중장기 전략과제로 선정한 각종 ‘로드맵’을 추진하는 데에 총 300조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작년도 우리 총 저축액 240조원보다도 많은 액수요, 소요비용 중 정부 예산에서 지출될 금액도 179조원에 달한다는 것이 23일 동아일보의 보도 내용이다. 내년부터 4년간만 따져 봐도 연평균 25조6000억원의 정부 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시장검증 안거쳐 현실성 의문▼

여기에다 앞으로 10년간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이전 비용 30조원, 작년 한해에만 14조원을 쓴 공적자금상환예상액 등을 고려하면 국가 채무는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 재정의 악화는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가 남미국가들과는 달리 단기간 내에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건전한 정부 재정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재정악화는 또 다른 위기 발생시 조기 탈출구가 없어짐을 의미한다.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5∼6% 정도의 성장이 가능하므로 매년 통합재정규모를 6∼7% 늘려나가면 자원조달이 가능하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대규모 국책사업의 투자효율성이다. 투입된 금액보다 훨씬 많은 부가 창출될 수 있으면 문제가 없다. 부족한 재원은 국채발행을 통해 국내외로부터 차입해 사용하면 된다.

빈곤아동 종합대책, 보육비 지원 등의 복지예산은 투자의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필요성에 따른 불가피한 지출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 혁신클러스터 육성 및 미래형 도시 건설, 신행정수도 연계 도로 건설 등 국가경쟁력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중장기 전략과제 대부분이 실은 현실성이 부족하고 시장의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위원회별로 수십, 수백 번 토론 끝에 나온 안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들 프로젝트는 다양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상의하달식으로 결정돼 관련부처 공무원마저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기업들은 투자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불확실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검증받지 않은 국책사업을 쏟아내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다. 이런 사업들은 나중에 현실성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돼 취소되거나 연기돼도 엄청난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 정작 우리 경제에 필요한 부분은 간과한 채 쓸데없는 데에 에너지를 낭비해 경제의 성장동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둘러본 국제 펀드매니저들은 기업 내용이 우량해도 한국 경제 환경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투자를 망설인다고 한다. 우리 경제규모는 40년 전보다 수십 배 커졌다. 60년대와 달리 의욕에 찬 일부 학자들의 정책아이디어를 실험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실패할 경우 잃을 것이 너무 많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장밋빛 구상은 버리고 동북아 물류중심, 경제자유구역 추진 등 몇 개만 집중적으로 선택해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실패땐 엄청난 후유증 불가피▼

지금처럼 투명성이 강조되고, 국경 없는 무한경쟁의 시대에는 정부의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시장의 견제를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누이 강조되고 있지만 정부가 할 일은 규제를 최소화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 대한 판단은 기업이 하는 것이지 정부 몫이 아니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기업에 강요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의심 찬 눈으로 기업을 바라보는 한 기업주는 재산권 보장을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재산권 보장 없이는 투자가 없으며, 투자 없이 혁신 없고, 혁신 없이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

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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