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선영/북한, ‘中역사왜곡’ 왜 침묵하나

  • 입력 2004년 8월 8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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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기 때문일까. 요즘 중국이 역사 장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구려사 왜곡을 시정하라는 우리 정부 요구에 대해 중국은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사 부분을 아예 삭제해버리는 ‘오만’으로 대응했다.

우리가 방관만 할 수 없는 이유는 중국의 ‘역사 장악’이 우리의 역사와 민족 정체성 왜곡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다민족 국가 형성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편전쟁을 전후한 청(淸)제국의 동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청말 옌푸(嚴復), 량치차오(梁啓超), 쑨원(孫文) 등의 민족이론 변화를 거쳐 ‘중화민국’ 시대에 중국 내 여러 민족의 기원을 고대로 끌어올려 그들과 중국의 관련성을 찾는 시도를 했다.

▼고대역사 끼워맞추려는 중국▼

그리고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은 다양한 모순을 안고 있는 여러 민족의 역사를 한 방향으로 묶어내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중국 소수민족 정책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의 조상이 고대로부터 중국에 속해 있었다는 ‘역사’를 들어 중국의 안정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의도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의도’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에 중국의 딜레마가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은 현대의 정치적 국경선에 기반을 두고 고대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명백한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시정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정부는 학술적인 사안이라고 방치하다가 문제가 커지면 떠밀려 중국에 항의하는 정도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중국의 역사 왜곡은 더 심화되고 결국에는 기정사실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북한의 ‘침묵’도 문제다. 지금은 침묵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북한은 분단돼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 민족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고구려사의 중요한 현장을 계승하고 있다. 중국의 현재 논리대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고 소수민족이라면 북한 지역에 포함된 고구려사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았음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북한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중국의 논리에 아무런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민족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북한도 고구려사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한 마당에 중국이 고구려사를 송두리째 왜곡하는 행위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는가. 과거사 왜곡은 단순히 과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우리 삶도 왜곡시키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신의주경제특구 실험의 좌절에서 보았듯이 북한은 중국의 협조 없이는 경제발전 계획을 수립하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중국의 역사 왜곡에 눈감을 수는 없다. 더구나 북한은 ‘주체의 나라’를 자부하고 있지 않은가. ‘주체’는 자신의 민족적 역사적 정통성과 정체성을 분명히 세우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닌가.

남북한간에 다양한 현안에서 이해가 불일치하는 면이 있다 할지라도 ‘역사 전쟁’에 관한 한 상호 공조하여 대책을 수립하고 해결해 나가는 민족적 줏대가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비록 늦기는 했지만 국회가 ‘고구려사 왜곡 중단 촉구 결의안’ 채택 움직임을 보이는 등 적극 대응이 시작됐다. 통일부는 남북장관급회담 등을 통해 북측에 공동 대응을 제안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민족의식 찾기 南北따로없어▼

이제는 북한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현재 정권의 안정과 일시적인 정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찬란한 한민족의 역사를 왜곡된 채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북한 모두 민족의식을 되찾고 통일의 당위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공동대응은 반드시 필요하다.

박선영 포항공대 교수·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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