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중국-러시아 다시보자

  • 입력 2004년 7월 8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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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우리 외교에 대해 비판도 높고 정부에 대한 요구도 많다. 분단이 해소되지 않고 강대국들에 에워싸여 있는 우리로서는 슬기로운 외교가 국익을 지키는 길임과 동시에 생존과도 직결되는 중대사다. 따라서 부적절한 외교관행과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정당한 것이다. 인사, 관행, 시스템 모두 국익에 부합하지 않게 되어 있다면 바꿀 것은 바꾸고 고칠 것은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외교를 잘하기 위한 전제는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이다. 지엽적이고도 다각적인 문제가 있지만 이 기본에서부터 우리는 취약하다. 중동지역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이해와 인식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국론이 분열됐을 정도다.

▼냉전시대 시각… 아직도 거리감▼

필자는 근래 세계질서의 구도와 한국사회 내부 지형변화를 고려해 미국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고 중국을 위시한 대륙 국가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식인 사회와 정부 일각의 반응은 ‘미국을 버리고 중국 품에 안기자는 것이냐’ 정도의 기계적인 수준이다. 이렇게 나오면 생산적인 논의도 어려울 뿐더러 세계적 흐름과 시대에 부합하는 상상력을 봉쇄하게 된다. 답답하고 아쉽다.

미국은 너무나 중요한 국가이기에 관계 재정립에 세심한 접근을 요구한다. 이런 대전제 아래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비롯한 기타 강대국들과의 관계 맺기를 슬기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강조하는 연유는, 그들의 한반도에 대한 한결같은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냉전 기간에 두 국가가 우리의 인식지평에서 배제돼 있었음을 상기하자는 취지다. 특히 우리는 러시아라고 하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하다가 망한 국가라는 단순한 인식론을 갖고 있다. 냉전체제의 문화적 부산물이다.

미국이 제국이라면 중국과 러시아도 한반도에 관한 한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미국에 대한 대응이 중요한 만큼 중·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중·러에 대한 인식은 표피적이고 단면적이다. 지금보다 훨씬 포괄적이고도 긴 호흡을 가진 이해와 인식이 간절히 요구된다.

단기적으로 봐도 중국은 우리의 세계최대 무역상대국으로서 앞으로 다각적인 이슈가 발생할 것이다. 또한 최대 투자국으로서 중국 경제에 중대한 일이 생기면 낭패를 보게 되어 있다. 이런 예측 가능한 일들에 대해 대비책을 강구하자는 것이 중국 중시론의 근거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을 관광이나 가는 국가,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 하다 안 되면 기업 이전을 할 수 있는 국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비용 측면에서 약간의 우위가 있다고 해서 여차하면 중국으로 가겠다는 기업계의 풍토는 바람직하지 않다. 제조업은 경우가 다르겠지만, 중국 가서 될 기업이라면 한국에서 안 될 리 없다. 중국 가서 기울이는 노력을 한국에서 쏟는다면 그 기업은 한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별 근거도 없이 러시아를 깔보는 인식은 중국보다 정도가 더 심하다. 러시아가 자신의 허술한 면모를 우리에게 보인 것은 소련이 망한 즈음의 아주 짧은 몇 년간이다. 러시아를 구걸이나 하는 국가 정도로 여기는 인식이 정부에도 있고 국민 사이에도 있다. 러시아를 협력의 파트너로 끌어들여 남북관계를 해소하는 데 지렛대로 삼고 균형외교의 한 축으로 삼겠다는 주장은 아직 소수의견이다. 동북아시대를 국정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참여정부에도 이런 분위기가 없지 않다. 동북아시대가 말장난이 아닐진대 러시아가 제공하는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 비전을 근본에서 허무는 태도다.

▼동북아시대 중요한 파트너▼

약소국 외교의 목표는 주변 강대국들과 필요한 만큼의 관계를 맺어 가능한 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데 있다. 외교의 근본은 상대방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인식이다. 이 근본이 제대로 서지 않고 분위기와 여론에 휘둘리면 결국 국가 전체가 상대방의 거취에 따라 휘둘리게 된다.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좀 안다는 전제가 있는데, 중·러에 대해서는 아예 기본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때가 왔다.

이수훈 객원 논설위원·경남대 교수·국제정치경제학leesh@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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