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韓美동맹]<4·끝>전문가가 보는 한미관계

  • 입력 2004년 5월 27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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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은 흔들리는 동맹관계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기 위해 이제 어떻게 새로운 관계설정을 해나가야 할까. 본보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 박용옥(朴庸玉·62) 한림대 특임교수와 문정인(文正仁·53) 연세대 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은 24일 저녁 본사 19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의 의미

▽박용옥 교수=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재배치 및 감축 문제 등은 사실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1970년대 중동 사태 때도 주한미군 차출 개념이 있었고, 용산 기지 이전은 90년대 초반 한국 정부가 민족자존 정책으로 추진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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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번에 아연실색한 것은 국방부가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문제를 외교통상부로부터 통보받았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한미 군사 당국간엔 대화가 없었다는 얘기니까요. 이런 일방적 통보는 과거엔 없었습니다.

▽문정인 교수=주한미군의 전반적 감축이나 재편성은 전략적 결정으로 사전 협의 과정을 밟았다고 봅니다. 이번 주한미군 차출은 이라크 현지에서 소요 제기가 됐고, 미 국방부에서 검토해 한국 외교부에 통보한 것인데, 결정 시간이 상당히 짧았을 것입니다. 한국이 미워서 주한미군을 빼간다기보다는 미국의 전술적 수요에 따른 결정이므로 민감하게 볼 필요가 없습니다.

○한미의 대북 인식 차이와 북핵 문제

▽박 교수=북한의 속성과 북핵 문제의 본질에 대한 한미의 시각차가 문제입니다. 91년 남북의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북한이 ‘핵을 이미 가졌다’, 또는 ‘앞으로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우리가 선의로 나가면, 저쪽도 선의로 나올 것이다’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처럼 못하겠다. 확실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차가 계속되는 한 북핵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이는 것은 한국입니다.

▽문 교수=몇 가지 시각차가 있습니다. 한국은 북한이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만들고 있으니 우선 핵 동결부터 하고, 검증 가능한 사찰부터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리비아 모델’ 운운하면서 북한에 ‘발가벗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협상을 통한 타결을 위해 모든 대안을 다 썼는데도 북한이 금지선(레드라인)을 넘는다면 노무현(盧武鉉) 정부도 모든 대북 경협을 중단시킬 것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미동맹 균열 원인

▽박 교수=우선 한국의 전체 인구분포에서 전후세대가 80%가 넘습니다. 그들은 자주성과 민족자존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둘째,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한미동맹이 민족공조의 걸림돌이란 인식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것입니다. 셋째, 주한미군의 주둔 배경과 한미동맹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넷째, 반미감정을 조직적으로 반미주의로 확대하는 세력이 많아졌습니다. 한국이 이런 식으로 반미를 하면 미국 안에서도 반한(反韓) 감정이 안 생길 수 없습니다.

▽문 교수=한미동맹은 쌍무 동맹 중 역사상 가장 성공한 동맹입니다. 하지만 그 성격이 변화되고,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9·11테러가 가져온 부정적 부산물일 수 있습니다. ‘부시 독트린’은 전통적 동맹보다 ‘대량살상무기(WMD)와 국제테러 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세력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고, 패권적 일방주의 모습도 보입니다. 미국의 이런 변화에 한국이 다 맞출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자주국방의 길

▽문 교수=제가 아는 노 대통령과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은 현실주의자이고, 실용주의자입니다. 그들도 지금 최고의 선택은 한미동맹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다만 한미간 협의의 틀이 이제는 조금 바뀌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한미간에 근본적인 힘의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대등한 관계를 바라겠습니까. 참여정부의 구상은 미국에 대한 지나친 심리적 예속 현상을 고쳐 보겠다는 것입니다.

▽박 교수=자주국방에 이의를 달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주국방을 얘기하고, 그로부터 열흘쯤 후에 ‘국방비는 못 올리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가 과연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자주국방은 미국의 지원을 받지 않고는 못합니다. 한미동맹의 의미와 중요성을 국민에게 확실히 알리는 일은 군 통수권자인 노 대통령이 해야 합니다.

○분수령은 용산기지 이전 문제

▽문 교수=국내 비정부기구(NGO)들은 ‘용산 미군기지가 오산 평택으로 가는 것은 미국의 전략적 수요에 따른 것이니, 옮기려면 미국이 자기 돈 내고 하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운동이 한미동맹에 주는 부정적 함의는 큽니다. 만약 주한미군 사령부가 일본으로 옮기면 그것은 한미연합사와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로 이어질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협정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휴전협정이 무효화되는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박 교수=미국도 변했고, 우리도 변했습니다. 그러나 동맹의 필요성을 서로 인정하고, 상호 신뢰하면 다른 것은 다 변해도 문제없습니다. 그 시험대가 용산 기지 이전입니다. 만약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오산 평택에서 이전에 반대해 드러눕고, 촛불시위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때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돼야 합니다.

○한미관계의 미래와 한반도 평화

▽박 교수=한미동맹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통일 후에는 동북아 지역의 안정균형 세력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된다고 안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조차도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한미동맹을 폄훼하는 것은 결코 지혜롭지 못합니다.

▽문 교수=한반도는 전쟁 상태에서 평화 상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과도기에 불안정성은 더 많아집니다. 그걸 최소화시켜주는 것이 한미동맹입니다. 한미동맹이 없어진다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 패권적 경합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상당히 어려워지고, 정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정리=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사진=김미옥기자 sal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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