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2기 개각]시스템 비껴간 ‘정치적 人事’ 삐걱

  • 입력 2004년 5월 24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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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高建) 국무총리의 장관임명 제청권 행사 거부로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들의 입각을 포함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집권 2기 국정운영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차기 총리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은 김혁규(金爀珪) 전 경남지사에 대한 거부감이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노동당까지 확산됨에 따라 집권2기 내각의 그림이 전반적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다음달 하순으로 미뤄질 개각의 폭도 통일, 보건복지, 문화관광부 등 3개 부처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 확실시된다.

특히 이번 조기 개각 추진과정에서 여권 스스로 원칙과 시스템을 무너뜨린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상당한 정치적 상처를 입게 됐다.

이번 개각 추진과정에서 청와대측은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인사추천위원회를 단 한 차례도 연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3개 부처의 장관에 열린우리당 인사들이 내정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기정사실화됐다.

노 대통령은 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이 난 직후 김우식(金雨植) 대통령비서실장으로부터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 일괄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건의를 받은 자리에서 “일괄사퇴는 무슨 얘기냐. 3개 부처 장관만 교체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 총리에게 장관임명 제청권 행사를 요청했으나 이 과정에서 국무총리의 제청권 행사 규정을 둔 ‘헌법의 정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부 출범 이후 “참여정부에서는 총리의 제청권 행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다”고 자찬했던 청와대 인사들은 “총리의 제청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을 뒤집기도 했다.

조기개각의 사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노 대통령은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과 김근태(金槿泰) 전 원내대표간의 조기 경쟁이 과열될 경우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동시입각 구상을 내놨다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개각 자체가 철저하게 ‘차기 대권주자 관리용’이라는 정치적 이유임을 인정한 셈이다.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24일 “3개 부처 장관의 경우 경질사유가 아닌, 인사사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경질해야 할 뚜렷한 이유는 없었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구상 때문에 장관을 바꾸려는 것이라는 얘기다.

정 수석비서관은 또 “총리와 19개 부처 장관 후보자로 653명을 선정해놓고 있고, 이를 193명으로 1차 압축한 뒤 다시 60명으로 압축해 노 대통령에게 이미 전달했다”며 “여기에는 3개 부처 장관으로 거론된 분들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사태를 놓고 청와대가 정무기능을 축소한 결과 전체적인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개각 무산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제는 절차적 정당성도 엄격하게 따지는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가 됐는데, 너무나 간단한 상식을 우리가 놓쳤다”고 자탄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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